그러나 당혹감은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새롭다’라는 훈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앞 ‘베다’라는 뜻은 오늘 문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답을 미리 말하면 ‘新’ 자는 ‘새롭다’가 아닌 ‘장작’이나 ‘고목’ 정도로 풀어야 한다 갑골문을 보면 ‘新’ 자는 도끼로 나무를 벤 후 이를 건조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모습이다. 우측이 도끼(斤), 좌하단이 나무(木), 좌윗쪽이 세워놓은(立) 나무를 상형하고 있다.
앞 글자 ‘벨 참’은 조선시대 형벌제도와 관련이 있는 문자다. 중세때 국가반란 등 대역죄를 지은 사람은 네 마리 말을 이용해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집행했다. 자주 들었던 ‘능지처참’이다. 여기서도 ‘벨 참’ 자를 쓰고 있다.
이제 ‘참신’의 뜻이 문법적으로 그대로 풀리고 있다. 바로 ‘참신’은 장작이나 고목을 베거나 팬다는 뜻이다. 따라서 뒤 ‘新’ 자는 여기서는 동사가 아닌 명사이자 목적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참신’의 뜻을 문자적으로 풀었어도 영 개운치 않은 면이 있다. 고목이나 장작을 패거나 쪼갠 것이 어떻게 ‘참신하다’ 뜻을 지니게 됐느냐는 점이다. 장작이나 고목은 어떻든 생명을 잃은 경우다. 따라서 그 겉은 거칠고 색깔 또한 본래의 것과 다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끼도 끼고 더 우중충해 진다.
그러나 이런 고목도 그 속을 쪼개면 매우 깨끗하다. 겉과는 질감과 색감이 너무 다르다. 마치 배의 속살이나 어린이 살결을 보는 모습이다. ‘참신하다’ 뜻은 여기서 나왔다. 유치하면서도 가장 정확한 비유가 되고 있다.
조혁연
hycho@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