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니 나른하고 졸리기도 해서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구구구구’ 비둘기가 울었다.
 하도 가까이 들려 깜짝 놀라 내다보니 어느 새 꽃은 다 지고 파랗게 잎이 핀 간이화단 개나리 숲에서 운다.
 그러나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봐도 아버지의 말씀처럼 ‘지집 죽고 자슥 죽고 나 혼자 우째 살꼬’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곧잘 그러셨다. 겨울밤 부엉이 암컷이 ‘떡 해 먹자 부엉’하면 수컷이 ‘양식 없다 부엉’ 하며 곧바로 따라서 운다고 하셨다. 가만히 들어보면 정말 가늘고 높은 소리로 ‘부엉’ 하면 다른 쪽에서 크고 우람하게 ‘부엉’하고 울었다.
 그뿐 아니라 타 들어가던 콩밭에 소나기가 내리면 콩 포기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하시고 토란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아이 간지러 까르르’ 한다고 하셨다.
 비 오는 날 혼자 가만히 나가 토란잎 아래 쪼그리고 앉아 들어보면 토란잎에 내리는 은구슬 같은 빗방울이 ‘또르르 또르르’ 하는 소리가 어쩌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아주 커서야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는 아버님 말씀인줄 알아들었고 도시생활에서 어쩌다 요행히 비둘기 우는소리를 듣게 되면 당신이 더욱 그리웠다.
 아버지의 좋은 말씀은 시간을 초월해 자녀들이 듣게 된다. 어쩌면 그 말씀은 가난에 대한 슬픔이기도하고 위로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수목원 산책길에서 아이들이 물었다.
 “어머니, 비둘기는 왜 저렇게 구슬프게 울어요?”
 나는 ‘이 때다’하고 말했다.
 “응 그거? ‘아내 죽고 자식 죽고 나 혼자 어찌 살까’하고 날마다 슬퍼하며 울고 있는 거래”
 아이들이 동시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가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들처럼 상큼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말을 저 아이들도 먼 훗날엔 알아듣게 되는 때가 오겠지.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그래도 ‘혹시나’ 하고 쫑긋 스치는 한 조각 호기심을 읽었다면 나는 고슴도치 엄마일까. / 수필가 이 정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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