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의 사정을 잘 봐주지 않을 때 ‘가차없다’라는 표현을 쓴다. 가령 “이번에도 나쁜 짓을 하면 가차없이 처단하겠다” 정도가 된다. 사전도 ‘조금도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다”라고 적고 있다.
 ‘가차없다’, 어떻게 만들어진 말일까. 엉뚱한 곳에서 정답을 만날 수 있다. 지금 이 박스는 말글을 다루는 공간이다. 오늘 문제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한자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여섯가지가 있다. 이른바 육서(六書)라는 것으로,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 등이 있다.
 이중 상형은 말 그대로 사물 모양을 본뜨는 것을, 지사는 선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밖에 회의는 뜻을 모으는 것, 형성을 ‘뜻+소리’를, 전주는 뜻을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밖에 가차는 뜻에 관계없이 소리를 빌어오는 경우를 말한다. 한자로는 ‘거짓 假’(가) 자와 ‘빌 借’(차)를 쓰고 있다. 이 현상은 외국어를 표기하는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는 독일을 ‘獨逸’로, 불란서를 ‘佛蘭西’로 쓰고 있다. 이는 앞서 일부 설명한대로 소리를 내기 위한 것일 뿐 뜻과는 무관한 글자이다.
 바로 오늘의 문제인 ‘가차없다’는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특히 ‘가차’ 한자의 여섯가지 형성 원리중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황상 한자를 만드는데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등 다섯가지를 모두 써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가차도 써먹었다. 따라서 이제는 임시로 빌어 쓸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는 다른 표현을 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 즉 융통성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처지를 가리킨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이제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으니, 만약 서운한 결정이 내려져도 이번에는 감내하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오늘의 문제인 ‘가차없다’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탄생했다. 이를테면 문자가 말을 만들어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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