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초등학교 2학년의 남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외래를 찾았다. 예의바르고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했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땅만 바라보며 엄마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주 기대가 많은 열정적인 모습이었지만 최근에 아이가 학교갈 때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학교에서는 집중하지 못해 멍하니 딴 생각을 하고 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최근 들어 친구들과의 놀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 상태였다.
 소아정신과 진료를 하다보면 이런 아이들이 종종 찾아온다. 조용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작은 아이의 마음에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쓰럽고 속상할 때가 많다. 현재 이 아이는 소아우울증을 진단받고 주기적인 면담과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부모에게는 양육에 대한 효율적인 교육을 통해 조금씩 호전되어 가고 있다.
 소아우울증은 전체 소아의 1%정도가 경험하게 되는 병으로 유전되는 경향이 있어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는 경우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 또한 환경적인 영향도 있어 부모의 싸움이나 별거, 이혼이나 과다한 과외활동, 학습에 대한 부담 등의 환경적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에도 우울증이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는 우울증이 없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우울증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걸리는 질환이므로 그런 능력이 되지 않는 소아는 우울증에 걸릴 수 없다는 근거였다. 하지만 이런 특성으로 인해 소아의 연령에 따라 우울증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나 어린 아이에게도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형적인 우울증이라면 소아나 청소년, 성인이 크게 다른 것이 없지만 소아 청소년의 경우 특히 ‘가면성 우울’이라고 불리는 다른 모습의 우울증이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이런 아이들은 아침이면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하고, 일요일 밤에 편히 잠들지 못하거나 학교에 갔다 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놀고, 주말로 가면서 이러한 통증이나 신체증상의 호소가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증상과 맞물려 학교 거부증이나 유뇨증이 생기고 초조함과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에 대한 관심이 줄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멍하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안 가려고 하고 거짓말, 싸움이 늘고, 사소한 일에도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우울감을 호소하지 않아 속은 우울증이면서 겉으로는 행동 문제로 치부되어 주변에서는 우울증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동안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더 나이가 많은 청소년의 경우에는 우울감의 호소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동기에 비해 갑자기 신체적 발달과 함께 근력, 충동성은 증가하지만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제어력과 정신적 성숙은 조금 늦게 발달하므로 자해나 타해와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안타까운 것은 청소년기의 경우 사춘기의 고비거니 하며 두고 보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가 개입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낫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이전의 즐거웠던 활동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스럽고 따분하게 느껴지게 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다 결국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위협이나 자살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 청주의료원 신경정신과장 김 영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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