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10년 어디까지 왔나

⑨ 협력적 지방정부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ㆍ사회적 발전을 이루는데는 성공했으나 환경오염, 가치관 충돌, 사회통합과 연대감 부족 등이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시민권의 향상과 사회 다원화로 인해 공익적 차원의 갈등을 비롯 각종 개발과정에서 지역적 갈등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 지역적인 갈등은 행정기관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주민들을 위한 행정을 펼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지나친 에너지낭비와 행정 효율성 저해라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각종 국책사업이나 정책개발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중앙-지방정부간, 지방정부간, 지방정부-지역주민간 갈등은 상호 조정을 통해 타협으로 이끌어 낼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갈등관리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편집자

◆갈등 실태

지방자치시대 각종 권한과 책임이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중앙정부-지방정부간 협력체제 강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갈등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부지선정,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공사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갈등은 수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앙-지방정부간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비롯 제2선수촌 건립, 동계올림픽 유치 등 국책사업을 꼽을 수 있다.

5년을 끌어온 태권도공원조성 사업은 최종 후보지로 전북 무주가 선정되자 이에 탈락한 진천군이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태권도협회가 제2선수촌 후보지를 진천으로 결정하자 음성군이 “태권도공원 탈락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진천을 정치적으로 결정했다”며 반발, 이들 지역간 반목과 갈등은 물론 후유증까지 나타나고 있다.

동계올림픽 후보지가 강원도 평창으로 결정되자 동계올림픽-태권도공원과의 빅딜설이 현실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중부권 축구센터 역시 신행정수도 후보지와 제2선수촌 후보지에서 잇따라 탈락된 충남 천안 배려 차원의 ‘나눠먹기식 배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간 갈등 사례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충북에서 선거때만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청주청원 통합문제. 지난해말 한대수시장의 강력한 통합 추진방침에 오효진청원 군수가 통합 절대 불가를 외치며 대립하고 있다. 청주시는 여론을 등에엎고 통합전담팀을 만들어 본격 통합준비에 나선 반면 청원군은 반대 논리개발과 함께 정치적인 통합 주장이라며 정면 대응하고 있으나 충북도 역시 별다른 조정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또는 주민간 갈등은 전국 지자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최대 현안중 하나.

주로 광역쓰레기 매립장, 쓰레기 소각장,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사업, 화장장 등 혐오ㆍ기피시설에서 갈등과 분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충주시 폐기물 소각장 예정지인 이류면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자 최종 입지선정을 당분간 연기하기로 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와관련, 충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8일 성명에서 “충주시는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갈등 정도를 낮추는 역할을 통해 지역사회의 대립과 행정력의 낭비를 줄여야한다”며 “이를 위해 전문성과 공익성을 갖춘 인사들을 참여시켜 지역사회 갈등을 해소시킬 갈등조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 제정 추진

1995년 민선이후 자치단체 관련 분쟁은 증가추세이지만 자치단체의 분쟁 예방 및 해결 역량 부족으로 효과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당사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에만 분쟁조정기구를 운영하는 등 사후적 소극적 분쟁해결에 치중해왔고 분쟁조정 기구의 기능 및 조정 역할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의 갈등관리 역량 확충을 위해 분쟁예방ㆍ해결을 위한 업무지침을 개발, 보급하는 한편 지역내 갈등관리 전문가를 갈등관리전문위원으로 위촉, 활용토록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중앙-지방, 지방간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직권 상정권, 이행강제 규정 신설 방침에 이어 자치단체 차원의 갈등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분산된 사회 갈등 관리제도를 체계화하고 효율적인 갈등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갈등관리기본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 법을 통해 중립적이 제3자 입장에서 갈등 당사자의 해결을 돕는 서구식의 ‘전문 조정ㆍ중재인’의 개념을 도입하고 공공정책 수립시 ‘갈등영향평갗를 받도록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갈등관리기본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갈등예방, 대안적 갈등관리방안 개발 및 보급, 당사자 해결원칙 등을 기본방향으로 하며 갈등관리 기본원칙, 갈등해결 지원기구, 국가ㆍ지자체 책무 등의 내용을 담게된다.

하지만 정부는 갈등관리기본법을 지난해 국회에 제출, 올해부터 시행을 목표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시안을 마련하지 못해 이 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현황과 대책

충북의 경우 지난 1995년 시ㆍ군간 분쟁조정을 위해 설치된 ‘충북도분쟁조정위원회’가 11년째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아 갈등 조정역할이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의 당사자가 신청하거나 도지사가 직권으로 상정할 수 있으나, 위원회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전국적으로도 단 한차례만 열렸을 뿐 분쟁조정위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충북는 정부에서 제정중에 있는 갈등관리기본법이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기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ㆍ군간 지역갈등과 분쟁의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2월 11일 실과ㆍ사업소 및 시ㆍ군 실무담당을 대상으로 제정중인 ‘갈등관리기본법’의 주요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공공갈등 관리방안’에 대해 사전교육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또 공공갈등의 사전 예방과 해소를 위해 공무원 해결능력 배양을 위해 공무원 교육원 각 과정별로 갈등관리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집단민원이나 행동으로 표출되어 갈등으로 전개가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카드화하며 상시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갈등관리기본법’제정 시행까지는 이 법 기능의 일부를 자율적으로 적용, 공공갈등의 사전 예방에 노력하기로 했다

어쨌든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갈등 예방 대책을 세운다 하더라도 각종 정책시행과정에서 어떤한 형태든 갈등을 피할수는 없는 문제다. 따라서 지역간 갈등과 집단민원 등을 조기에 조정, 협의하는 역할과 함께 국책사업이나 현안사업 선정시 계획수립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영향 분석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예방 또는 최소화하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 의견

“갈등 관리로 긍정적 방향 유도”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발적인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개발의 활성화가 목전에 다가온 듯 했다. 그러나 지방화시대의 진행상황을 보면 본래 기대했던 것처럼 만족스러워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우선 지방자치제의 경험부족이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재정지원을 담보로 상급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감독 및 통제는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지역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집단간 또는 정부간(중앙 대 지방, 지방 대 지방)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대응력 부족이 문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두드러진 갈등의 원인은 ① 경험이 부족한 지방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과도한 요구분출, ②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별 기능 및 사무배분에 있어서의 모호성, ③ 단체장들이 후보시절 무모하게 내걸은 정책공약, ④ 자치단체 간 협력해야 하는 정책이나 사업의 수가 급증하고 그 과정에서 비용분담의사결정 건수의 급증, ⑤ 지방간의 재정자립도 격차와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 ⑥ 죄의식 없는 지역주민들의 님비와 핌비현상, ⑦ 뿌리 깊은 연고주의와 지역감정 등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 문제들은 상호작용과정을 거쳐 정부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갈등은 어떤 형태를 보이든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그렇다고 갈등을 무조건 회피해야 할 혐오스러운 것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은 사회체계에 잠재되어있는 문제를 분명하게 해준다. 또한 건전한 해결과정만 밟을 수 있다면 갈등은 오히려 사회의 면역시스템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시스템이 아직도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갈등을 잘 관리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제도 및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당사자간 협상을 유도하고 존중해주는 사회문화적 토양을 조성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정책결정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주민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주민의식수준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민주의식을 함양시켜 대화와 협상능력을 배양시켜주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여야 한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의 규모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있는 것도 지방간의 갈등사례를 증폭 시켜주는 한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기초자치단체의 규모 및 영역을 현재보다 광역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하다.

마지막으로 갈등현상이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더 큰 병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예방접종’이라 생각하여야 한다. 지방화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통관의례’라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갈등해결의 첫걸음이라 사료되기 때문이다.

/건국대 행정학과 안형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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