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배지 달아주기
친절배지 달아주기
  • 승인 2000.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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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장미도 백합도 아니요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피어나는 「웃음 꽃」이다.

너도 나도 웃음 꽃 핀 얼굴로 서로를 대한다면 우리사회는 훨씬 명랑하고 밝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미소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관공서를 가든 시장엘 가든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화석처럼 굳어있다.

미소띤 얼굴로 손님을 맞고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기분도 좋아지고 일의능률도 훨씬 오를텐데 말이다.

무표정한 얼굴은 우선 상대방의 접근을 차단한다. 상대방이 화나 있는듯 보이면 왠지 말걸기가 찜찜하다.

외국인들은 산길에서 마주치거나 엘리베이터안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나누고 미소로 화답한다.

서로를 경계하며 굳은 얼굴로 스쳐가거나 모른척외면하는 우리의 표정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우리의 얼굴이 그처럼 굳어진데는 그만한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슬퍼도 슬퍼하지 아니하고 기뻐도 기뻐하지 아니한다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생활철학속에 인간의 희노애락을 드러내는 얼굴표정이 실종되었던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일단 친숙해진 다음이면 간, 쓸개 다빼주기 여사이지만 여간해서는 깊은 마음을 천박스럽게 표현하지 않았다.

게다가 숱한 외침(外侵)으로 전쟁의 상흔이 우리의 얼굴에서 미소와 친절을 빼앗아 가버렸다.

툭하면 전쟁이요 피난보따리 싸기에 이골이 난 민족이다.

그 급박한 역사의 가도를 숨가삐 달려온 한국인에게 미소와 친절이 붙어있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는 우리에게도 그만한 여유와 친절이 있었다. 흔히 「신라인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영묘사 출토 수막새 기와의 인물상을 보면 천년의 미소가 절로 우러나온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벼랑위에 핀 신비의 미소다.

불빛의 각도에 따라 미소의 느낌이 다른 아기부처의 미소는 가히 모나리자의 미소를 압도한다.

언제부턴가 생활주변서 실종된 미소와 친절을 다시 찾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굳은 얼굴로는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LA 흑인 폭동이 발생했을 당시 한국인과 흑인 사이에 갈등을 빚은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무표정한 얼굴에 있다는 후일담이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에 흑인이 들어갔을때 굳어있는 한국인의 얼굴을 보고 행여 자기네를 무시해서 그러지 않나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항상 눈길이 마주칠때 웃고 지나가는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리의 얼굴표정이 이른바 「문명의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옛말에도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웃어서 손해날 일은 별로 없다.

미소와 친절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미소없는 친절은 생각할 수 조차 없다.

때마침 바르게살기 충북도협의회에서 도민화합을 위한 친절배지 달아주기 캠페인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잃어버린 우리의 웃음과 친절을 되찾아 주도록 항구적인 켐페인을 벌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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