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란 언어와 더불어 인간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지구상에 최초의 문자는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로 기록되고 있으나의사의 집단전달을 가능케한 인쇄매체의 고향은 역시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찍어낸 청주 흥덕사지로 꼽힌다.

인쇄문화뿐만 아니라 세계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상지이기도 한 청주에서「직지」와 연계하여 「세계 문자의 거리」를 조성한다는 소식은 인쇄문화의 메카를 더욱 빛낼 낭보(朗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청주시의 계획에 따르면 오는 9월 개막될 「2000청주국제인쇄출판박람회」에 맞춰 제막식을 갖는다고 하니 너무 시일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는 불과 제작기간이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4개월동안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작품을 공모하고 제작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듯 싶다.

이때까지 작품이 완성된다면 다행이겠으나 억지 춘향으로 정해진 기일에 꿰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세계문자의 거리라는 명소를 조성하는데는 우선 언어학적인 접근과 연구가선행돼야 하고 어떤 언어를 어떻게 각인할 것인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기때문이다.

급하게 서둘러 일을 마치다 보면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건국대에선 세계 언어문자 조형물을 이미 조성한바 있다.

각국 대사관의협조아래 국가별로 대표적 문자를 여러형태의 비문에 담아 놓았다.

이와 더불어 문자의 발달과정도 훑어볼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외국에서는 독인의 구텐베르그 박물관이 있는 마인쯔에 역시 문자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사각형의 대리석에다 여러 문자를 새겨놓으며 구텐베르그의 업적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상기하면 청주시의 문자 거리 조성은 흥덕사지의 업적을 업그레이드할 문화사업으로 평가되며 문화도시 청주의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주에 있은 문자의 거리 추진위에서는 이러한 당위성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 당초 계획대로 20∼30여개국의 국기와 국가 악보를 새긴다는데에는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국기와 국가는 너무 권위적이기 때문에 문자의 거리를 경직화할 우려가 있고 또 제작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다면 해당국가에 대해 큰 결례를 범하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자의 거리는 문자를 새기되 국가별이 아닌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 어군별(語群別)로 추진되야 하며 어군을 대표하는 명언(名言)을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집약됐다.

또한 이를 제작함에 있어 화강암이나 오석(烏石)등 한국에서 산출되는 돌을 재료로 하여 일괄적으로 규격화할 경우 접근성 친근성이 차단될 우려가 있으므로 조형성을 가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건립장소로는 청주예술의 전당과 세 쌍둥이 체육관 사이의 도로를 문화의 광장으로 조성할 경우 최적지로 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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