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랜 분단의 아픔과 적대 감정속에서도 남북한에서 동시에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두 분 있으니 다름아닌 단재(丹齋) 신채호와 벽초(碧初)홍명희이다.

두 분은 우연하게도 모두 충북 출신이니 이 또한 학향(學鄕)의 긍지아니겠는가. 단재는 청원군 낭성이 고향이요, 벽초는 괴산이 고향이다.두분 다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며 당대 제일의 필객(筆客)이었다는 점도 우연한 공통점이다.

다만 벽초는 월북하여 북한 부수상까지 지낸 전력이 있기에 그의 뛰어난문학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됐으며 오래 세월을 잊혀진 인물로 치부해 왔다. 이를테면 벽초는 분단의 희생물이자 이데올로기의 속죄양이었던셈이다.

만족할만한 상황은 아니나 벽초에 비해면 단재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낭성, 고드미 향리에는 단재 사당이 일찍이 들어서 있고 기념관도 개관채비를 차리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추모사업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청주예술의 전당앞에는 단재의 동상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념사업의 열의나 규모가 의암(義庵) 손병희에 비하면 턱도없이 부실하다. 의암의 생가는 원형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게 꾸며놓고 주변조경및 기념관을 훌륭히 지어놓았으나 단재의 관련 유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두 분의 역사적 무게를 저울질하거나 단순비교할 성질은 아니지만 여러 업적으로 봐서 단재의 무게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럼에도 단재의 기념관은 마치 감방을 연상케 하는 등 관계당국의 성의가 덜 미치고 있다. 이때문에 단재 유족측에서는 유품기증을 거부하고 있다.

전시품이 없는 기념관은 무의미하다. 문학계 일각에서 벽초에 대한 대대적 기념행사에도 불구하고 충북지역에서벽초에 대한 애착심은 바닥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임꺽정의 산실이자 괴산지역의 3·1운동을 모의한 동부리 생가는 돌보는 이 없이 폐가로 전락하고 있으며 언제 팔릴지 모를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봉착해 있다. 동부리 생가는 홍명희의 생가라는 사실이외에도 경술국치후 자결한 홍명희부친, 홍범식의 가택이다.

이러한 사연이외에도 동부리 생가는 중부지방 전통가옥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고택이다. 문학단체에서 10여년전 벽초의 문학비를 해세웠는데 벽초의 월북 전력으로 그간 괴산 원호단체와의 적지않은 마찰을 일으켜왔다.

6·25당시 목숨을 담보한 원호단체 구성원들의 충정과 통분을 모르는바 아니나 이제는 지난날을 용서하고 남북평화공존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진행되는 동안 문인과 원호단체간 원만한 타협을 보아 비문 일부를 수정하여 철거됐던 문학비를 다시 설치한다고 하니 퍽 다행스런 일이다. 이는 민족의 공동체 형성에도 꼭 필요한 작업이고 앞으로 통일 조국을 위해서라도 응당 매듭지어야 할 부분이다.

현대소설의 기점인 임꺽정전을 위해서라도 서운한 부분을 접고 대승적 입장으로 나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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