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미국 43대 대통령이 우여곡절끝에 탄생했다. 1년여의 선거기간과 35일간 사상 유례없는 박빙의 승부속에서 당선자를 가리지 못한채 법정을 오가며 업치락 뒤치락하던 미 대선이 결국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플로리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재검표를 실시할 때만 해도 너무 근접한 표차이여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연방 대법원은 재검표가 위헌임을 들어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을 뒤업고 이를 파기 환송해 사실상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다.

 물론 재심하는 과정에서 판사들도 7대2로 위헌을 결정했고 위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재검표 결정을 파기하라고 결정하는데에도 5대4의 판결 결과가 나와 최고법정에서 조차 고뇌한 흔적이 역력하다. 엘 고어 민주당 후보는 이같은 판결이 난 어제 부시후보의 승리를 인정했다. 수백표내의 접전속에서 패배한 심적부담이 결코 적지 않았을터인데도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를 승복했다.

 우리는 이같은 미국의 대선을 지켜보며 몇가지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첫째로 대선의 키를 쥐고 있는 연방 대법원이 오직 법정신에 따라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집권당의 프리미엄도 없었고 어떤 외풍도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세계 최고의 권좌라고 하지만 법에 따라 미련을 버리고 깨끗히 승복하는 그들의 성숙된 준법정신이다. 장외투쟁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역시 법논리를 앞세우고 한결같이 이에 따르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째로 전대미문의 근소한 표차로 미국의 국론이 분열상을 보이고 경기침체 하강국면도 감지되고 있지만 최대 이슈를 접하고 혼란에 빠지면서도 큰 소요없이 이를 차분히 지켜보고 봉합하는 미국의 시민정신과 앙금을 씻으려는 국민통합 의지가 돋보이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국론 분열은 물론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하는 시위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고 또 대법원의 판결에 쉽사리 승복하겠는가 말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에서도 선거가 끝난후 선거부정 시비와 더불어 고소, 고발이 끊이질 않고 이에대한 법정공방에 상당한 시일을 소요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때 항차 대선에서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과연 미국처럼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한 것이지만 차제에 우리의 정치문화나 정치역량을 미 대선과 비교 검토해보는것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유익하리라 본다.

 서구와 우리나라는 엇비슷한 민주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기층문화가 서로 다르다. 서구가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는 계약의 문화라면 우리는 농경문화에 기초를 둔 공동체 문화다. 동고동락의 속성을 갖고 있는 공동체 문화는 상대방의 능력을 잘 인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기층문화이지만 세계화의 가도에서 우리식의 정치문화만을 고집한다면 정치후진국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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