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청주가 교육도시라는 점은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나타난다. 청주유일의 국보인 용두사지 철당간 아랫부분 명문에 보면 통일신라시대 9주5소경의 하나인 서원경(西原京), 청주에서 교육에 매진한 사실이 나타난다.

 당간기에는 학원경, 학원낭중이라는 교육책임자의 벼슬이름이 등장한다. 이는 오늘날 교육감이나 교육장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율곡 이이는 청주에서 청주목사를 지낼때 서원향약을 만들었는데 이 것은 해주향약과 더불어 우리나라 향약의 교과서격이 되었다.
 또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파천하던 고려 공민왕이 한때 청주에서 머무르며 중앙에서나 실시하는 과거를 이곳에서 실시하고 그 합격자의 방을 취경루에 써 붙였다. 취경루는 조선조에 망선루로 바뀌었고 일제에 의해 헐린후 제일교회안에서 망향가를 부르다가 최근에 중앙공원으로 이전 복원된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

 이렇듯 교육도시 청주의 역사적 호흡은 매우 길다. 오늘날에도 청주는 흔히 교육도시로 불린다. 50~60년대 교과서에 보면 청주를 「교육의 도시」로 명시하고 있다.
 그 말처럼 청주에는 학교가 많고 따라서 학생수도 많다. 청주시민 3명중 1명꼴이 학생이다. 학생수가 많다는 것은 교육도시를 형성하는 기본조건이다.
 그러나 무조건 학생수만 많다고 해서 교육도시로 치부하는 것은 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이다. 교육도시로서의 교육 인프라가 얼마나 갖추어져 있는가를 점검해 볼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육도시에 시립도서관이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용암동 일대에 시립도서관 신축이 가시화됐지만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어디 그뿐인가. 학생들이 방과후 여가를 선용할 마땅한 장소도 별로 없다. 학생들의 입장으로선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도시전체의 분위기도 독일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그와 같은 정취가 우러나지 않는다.
 교육도시 청주의 시상(市像)은 샂산업화, 정보화 터널을 지나면서 이상하리만큼 변질되고 있다. 오늘날 청주는 교육도시, 전원도시, 산업도시의 미로를 헤메고 있다. 물론 도시는 규모가 팽창되면서 자연스럽게 복합기능을 갖는 것이지만볺본래의 기능을 접어두어서는 안될 일이다.

 청주에 캠퍼스 타운을 조성한다는 것도 흐지부지됐고 대학도시로의 육성방안이 백가쟁명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였다. 대학가의 주변을 보면 실로 한심하다. 묵향이 충만해야할 그곳에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러브호텔이 머리를 잇대고 있다.
 산업화에 밀려 교육도시 청주의 참모습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교육도시로서의 육성보다 산업단지 조성이나 관광산업 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듯 하다.
 대학으로 보면 절반이상이 외지 학생들이다. 이들이 청주에 머무르며 면학에 열중할만한 보금자리도 시원치 않다. 기숙사는 태부족이고 대학가 주변은 하숙, 자취 등으로 포화상태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버스가 일찍 끊겨 불편이 많다.
 아무리 첨단산업시대라고하지만 교육도시 청주의 정체성만은 꼭 살려나가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