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과 경제한파속에서도 상큼한 낭보가 우리고장 시골마을에 전해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한국 시단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김수영문학상이 느닺없이 보은에 사는 송찬호시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느닺없이」라는 어찌씨(부사)는 우리가 그를 잘 알지 못했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충북문단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그가 어떻게 이 큰 상을 받게되었는가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의 이번 수상은 「느닺없이」가 아니라 독특한 시세계를 개척하고 든든한 시작(詩作)활동을 벌인끝에 인정받은 필연의 결과다.

 각종 상(賞)이 난무하여 그 권위를 잃고 있는 세태에 송시인의 수상은 상의 본질과 참다운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오늘날의 수 많은 상들이 지명도나 나눠먹기식의 적당주의에서 춤을 추기 일쑤인 것과 비교하면 송시인의 수상은 참으로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상이란 여기서 보듯 공적을 토대로하여 대상자를 발굴하는 숨은그림 찾기같은 것이다.
 송시인의 이름 석자가 다소 생경스럽게 느껴질지 모르나 그를 주시해온 사람들은 일찌기 한국시단의 차세대 주자로 보았다. 충북도내에서는 그리 지명도가 높지 않았으나 한국시단에서는 이미 그의 작품을 인정하여 해외로까지 작품이 번역된 터이다.

 그는 충북도민 대상을 받은 적도 없으며 군내에서조차 이렇다할 상을 받은게 없다. 초야에 묻혀 오로지 자기의 작품세계에만 몰두해온 외곬수 시인이다.
 그는 어느곳에서도 자기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시를 쓰고 동인지를 발행하는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자신을 알아달라고 통사정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난해한 시를 굳이 이해시키려 들지도 않는다.
 소월류의 시에 순치된 독자들이라면 그의 시를 오래 잃지 못한다. 가령 첫 시집인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를 놓고 볼때 흙이 어떻게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의아심을 품게 된다.

 이번 수상시집인 「붉은 눈 동백」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은 활짝 피었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으로의 붉은 갈기...」
 식물을 얘기하는데 동물인 사자가 등장한다. 동백과 사자의 대비, 식물과 동물의 치환 등 그의 시세계는 다분히 실험적 용어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상파화가들의 태동을 곱씹게 된다. 고전주의, 사실주의가 판을 치던 당시 원근법조차 무시하고 사물을 이상하게 표현한 고흐, 고갱 등 인상파 화가들은 화단의 이단아였으며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이 수많은 관람객의 감동을 자아낸다. 문화란 이런 것이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눈 높이에 따라 그 부가가치가 점증되는 것이다.
 우리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을 잘 알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예술인이었다. 그를 우리 곁으로 끌어들이는데에도 십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고난도의 시이지만 한편쯤 감상하며 세모를 맞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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