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새해예산 편성과 승인과정에서 문화예산이 난도질 당하고 있다. 안톤체홉의 벚꽃곷동산에서 벚꽃나무가 도끼에 찍혀나가듯 문화관련 예산이 툭하면 삭감되고 있다. 청주를 비롯 충주 옥천 등 도내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문화예산을 깎는 추세이고 이 과정에서 지역 문화인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경제한파에다 긴축예산편성이라는 지자체의 살림살이를 모르는 바 아니나 왜 하필이면 문화예산이 도마위에 자주오르고 삭감대상 제 1호로 치부되는 것일까.
 말로는 지역문화 창달을 각 지자체가 한결같이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문화예산을 깎기에는 적지않게 문화경시 풍조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가 힘들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얼어 죽을 문화냐고 생각한다면 문화의 전쟁시대에 전쟁도 치르기전, 패잔병이나 다름없다.

 문화예술은 얼굴을 치장하는 무슨 액세서리나 빵에 바르는 잼도 아니다. 문화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장식품같은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며 콜린 트위디가 언급했듯 잼이 아니라 빵 그자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구태연한 문화인식은 이제 벗어던질 때도 됐다. 지금 우리는 문화입국을 표방하고 있으며 문화의 전쟁시대인 21세기에 이미 진입하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축제를 열고 문화상품화에 열을 올리는 것 같더니 경제가 조금 어려워지니까 언제 그랬냐는듯 문화예산 깎기에열을 올리고 있다.
 경기의 상승, 하강 곡선에 따라 문화가 춤을 추어서야 되겠는가. 경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과 문화와 예술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인간생활의 필수 영양소다. 영양소중에서도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정신적 영양소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경제가 어려울때 문화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 그 문화를 가꾸고 치장하면 경제난을 돌파하는 문화의 무기도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의식주의 어려움속에서도 결코 볼쇼이 무용단을 포기하기 않는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차이코프스키 콩쿨을 여전히 연다.
 문화예술은 풍요속에서 꽃피는 것만이 아니다. 엄동설한에서도 동백꽃이 피어오르듯 문화는 시련속에서도 얼마든지 빛을 발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얼마전 청주시예총의 세미나에서 지적됐듯 문화예산은 한마디로 외화내빈이다. 올해 청주시 문화예산의 예를 들면 놀랍게도 작년보다 무려 2.24배나 증액된 2백87억원이나 된다. 이는 전체 예산의 9.2%에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러나 세목을 들여다 보면 여지없이 실망하게 된다. 항공엑스포등 관주도적인 행사예산이 상당액이고 문화재관리, 문화예술회관 운영, 고인쇄박물관 운영, 일반사회교육 등을 뺀 순수예술단체 지원액은 1억1천6백만원으로 총 예산대비 0.062%에 그치고 있다.
 쉽게 말해 장기판에서 차,포 떼고나니까 졸 몇 개만 남는 셈이다. 아무리 살림살이가 어려워도 문화예산은 최소한 1%를 확보해야 한다. 1%는 문화창달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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