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앞에는 설국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은 대충 이렇게 시작된다.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일본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폭설이 내리면 시골길은 인적이 끊기고, 산에는 새도 잘 날지 않는다. 이런 설국의 풍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동화의 심리를 가져다 준다. 7일 강원도 대관령에 1m에 가까운 폭설이 내리면서 차량 수천여대가 도로위 눈길에 갖혔다가 풀려났다. 추운 겨울밤을 도로위 차속에서 고스란히 지낸 셈이다. 그러나 이번 폭설 사태는 도로위 밤샘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기상대는 이번 폭설을 앞두고 「전국에 올들어 가장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 이같은 사태는 익히 예견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시민 상당수가 대관령을 넘어 동해로 밀려 들었다.

수도권 시민들이 바다 구경만을 생각했다면 근처 인천 앞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시민들은 서해를 외면하고 고생길이 뻔한 것을 알면서 동해행을 택한 이유를 이른바 「길문화」에서 찾고 있다. 서해로 향하는 경-인 가도에는 공업지대만 있지 설레임으로 가는 길다운 은 없다. 길은 정지하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지나가는 와중에 낯선 곳의 새로운 풍경과 살아가는 모습을 차창밖으로 감상하게 된다. 지나감을 멈추고 정지를 하면 그곳에는 휴게소, 즉 옛날 식으로 하면 주막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길이 끝나는 곳에는 도시와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런 길문화에 대한 기대감이 유전처름 흐르고 있다. 이쯤되면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개발 사업이 어느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답을 얻게 된다. 홍수로 상처를 입은 계곡을 도시 하수구 정비하듯 반자연굛생태적으로 하면 안된다. 자연 본래의 모습대로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콘크리트 숲에 갖혀 살던 도시민들이 먼 고생길을 마다 않고 시골 지자체를 찾게 된다. 수도권 시민들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자연스러움」을 즐기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에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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