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은 참으로 길다. 6ㆍ25당시 영동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이 세월이 흐를수록 치유가 되기는 커녕 점점 덧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사건에 대한 한ㆍ미 양국의 조사결과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이른바 「유감 표명」발표를 종합해볼때 노근리의 아픔을 서둘러 덮으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미 대통령의 이번 성명은 6ㆍ25당시 한국인 양민 살상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하나 실제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보상및 배상을 언급하지 않고 있어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명에는 분명 사과(apology)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깊은 유감(deeply regret)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깊은 유감이 사과와 같은 의미라고 애써 해석하고 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 영어를 모를리 없다.
 이번 발표가 노근리 사건에 대해 미국 최고 통치권자로 부터 공증을 이끌어냈을지는 몰라도 우선 용어 선택부터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유감」과 「사과」의 골짜기를 헤메는 것을보면 노근리 사건의 실체를 외면하고 언어유희를 하는듯한 느낌도 일면 든다.
 그 오랜 시일을 인내하며 미국의 진정한 사과와 더불어 배상을 요구했던 당시의 피해자들로 보면 이번 발표에 동의하지 못할만도 하다.

 군대는 조직의 특성상 명령계통을 생명으로 한다. 도대체 발포 명령없는 발포가 어디 있겠는가. 당시 참전했던 미군의 증언이 속속 있었음에도 사격 명령이 없었다는 태도다.
 노근리 쌍굴다리에는 피난민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다. 기관총 사격 자국이 선명하고 당시 부상자가엄연히 생존하여 이를 증언하고 있는데 미국은 마치 이를 우발적 사고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듯 하다.
 미국내에서의 여론조사에서도 노근리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미국 정부는 100만 달러 규모의 추모비 건립과 75만 달러 정도의 장학금 조성으로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이 정도의 조치로는 피해자의 아픔을 추스릴 수 없으며 또 이 기금이 노근리 패해자들만에 대한 배상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조치와 배상을 촉구하는 바이다.

 미 대통령의 성명은 전에 비하면 진일보한 조치임에 틀림없으나 실제적으로 노근리 피해자에 대한 보상및 배상은 여전히 산너머 산이다.
 그처럼 오랜 조사기간을 거쳤는데도 발포명령이 있었느니 없었는니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반세기를 지난 문제여서 정확한 조사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문제가 의외로 간단히 풀릴 수도 있다.

 미국의 진정한 사과와 합당한 보상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의 아픔이란 외면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다. 멍든 가슴을 녹여주는 화해의 몸짓과 보상이 반세기의 한을 푸는 열쇠가 되리라 본다. 한국과 미국은 전통적으로 혈맹 관계에 있다. 우호를 더욱 다지기 위해서라도 속시원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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