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다마 명절이 돌아오면 조상께 여간 미안한게 아니다. 우리 농토에서 생산된 여러가지 농산물로 차례상을 차려야 할텐데 세계화 내지는 무역자유화 열풍속에 외국산 농산물이 차례상까지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홍동백서, 조율이시의 상차림은 중국산이 대부분이고 어동육서는 일본산, 캐나다산, 미국산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접어들고 보니 설 차례도 국제식으로 지내야 할 판이다.

 쌀과 찹쌀로 맑은 술을 빚어 올리고 떡살을 담갔는데 이것마저도 국내산이지 외국산이지 구분하기가 힘들다.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는데 이제 나이도 국제적으로 먹어야 할 판이다.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우선 참회의 축문이라도 올려야 할 판이다. 「조상님,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금할길 없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라 상차림의 갖가지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사리며 도라지며 갖은 양념까지 중국산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탕류에는 LA갈비가 들어갔는데 너그러히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디 상차림뿐인가.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방식도 따지고 보면 중국식이 아닌가. 조선조 5백년동안, 아니 현재까지도 우리의 관혼상제는 이른바 「주자가례」에 따르고 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어른께 세배를 올리는데 복장도 뒤죽박죽이다. 전통한복에다 개량한복, 그리고 양복과 캐주얼 웨어가 뒤범벅이다. 세배돈을 받아든 아이들은 햄버거나 피자를 사먹으러 가고 어떤 아이들은 PC방에서 연휴를 보낸다.

 명절놀이도 고스톱이 우리의 전통놀이를 밀어내고 있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오순도순 즐기던 윷놀이나 담벽과 벽공을 솟구쳐 오르던 널뛰기, 제기차기, 연날리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쓰리 고」의 외침이새해 아침의 고요함을 가른다.
 조상묘에는 잔설이 분분한데 뭐가 그리도 급한지 콘도나 스키장을 찾는 행락인파는 장사진을 치고 있다. 경기한파로 실업자가 90만명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행락인파는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있으니 「우리나라 IMF 맞아?」하는 자탄의 소리가 저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명절특선 영화도 대부분 외국영화다. 춘향이나 이도령의 모습보다 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나 해리슨 포드가 우리곁에 훨씬 가까이 와 있다. 인터넷에서는 음란물이 명절도 아랑곳 없다는듯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명절의 풍속도를 보면 우리의 정체성이 좀먹어 들어 간다는 사실을 절로 느끼게 된다. 우리 것을 1백% 지키기는 매우 어려우나 그래도 미풍양속의 원형질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승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한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 속은 텅텅 비고 겉만 남아 있는 요식적 빈 껍데기 명절이 세계화의 격랑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색동저고리, 옥색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 입고 친척집이나 이웃을 돌며 새해인사와 덕담을 나누던 고유의 풍정이 산업화, 정보화속에서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허기사 새해인사 조차도 인터넷을 통해 하는 세상이니 변모된 세태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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