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북학파의 거두인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은 만학도였다. 그는 30이 넘어 비로소 학문을 깨우쳤지만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양반전, 허생전. 호질같은 명저를 남겼다.
 그가 연경에 가기위해 요하(遼河)를 건너는데 물길이 험하여 낮보다는 밤을 택해 말을 타고 도강(渡江)하였다. 강물의 흐름을 보고, 험한 물소리를 듣는 것 보다 안 보고 안 듣는 것이 안전했다는 이야기다.
 귀와 눈은 자세할수록 더욱 병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추스리니 강물은 옷이 되고 몸이 되어 험한 강물소리가 이내 사라졌으며 그 결과 아홉 번을 모두 무사히 건넜다 한다.
 일반적인 현상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은 진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말도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한 밤중에 뱀을 보고 기겁하여 놀랐는데 날이 샌 다음 다시 보니 뱀이 아닌 사내끼였다면 논리의 전개가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바보아닌 바보는 수없이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평강공주의 부군인 온달장군이다. 온달은 평강의 지극한 내조로 인해 장군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수(漢水)이남의 땅을 다시 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출사표를 던진 온달은 아차성(아단성)전투에서 전사하였는데 그곳이 서울 아차성이 아니라 단양 아단성이라는 학설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터이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신체장애자였으나 촉각만으로 새 소리를 들었고 새 모습을 잃어냈다. 인상파 화가의 태두격인 빈센트 반 고호는 주위사람들로 부터 화가로서 재질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었다.
 고야는 피카소와 더불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 또한 청각장애자였다. 그의 그림중 「목욕하는 마야」는 현재까지도 미술계의 논쟁으로 남아 있다. 한때 성냥갑에도 등장했던 이 그림은 고야의 대표작인데 그 주인공의 실체를 두고 아직도 수많은 논문이 발표될 정도다.
 베토벤이 귀머거리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청각을 상실해 가는 도중에도 운명, 합창등 주옥같은 교향곡을 남겼다.
 만년에 청원군 북일면 형동리 당산(堂山)마을로 낙향하여 불꽃같은 예술혼을 펼치던 운보 김기창 화백이 타계했다. 바보 산수를 즐겨 그리던 대가의 붓 놀림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청각장애자인 그는 바보론을 펴면서 오히려 듣지 않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바보론과는 달리 천재성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며 화선지에 예술의 마그마를 수도없이 쏟아냈다. 그는 바보의 철학, 미완성의 위대함을 세인에게 보여주고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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