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선생 식수비
율곡선생 식수비
  • 임병무
  • 승인 200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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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급 기관장이나 유명인사의 기념 식수는 비단 오늘날 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기념식수를 수식(手植)이라 했는데 이는 손수 나무를 심었다는 뜻이다.
 청주목이 있던 청원군 청사 앞뜰에는 선조 4년(1571),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만드는 등 선정을 펼친 대유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의 기념 식수비가 봄볕에 졸고 있다.

 높이 105㎝, 폭 30㎝, 두께 16㎝ 크기의 이 식수비는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는데 한가운데 해서체로 새긴「栗谷先生手植松」(율곡선생수식송)이라는 각자가 선명하다. 즉 이율곡 선생이 손수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이다.
 비문 오른쪽으로는 崇禎後 五 丙戌立(숭정후 오 병술립)이라는 연대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숭정은 명나라의 연호로 명나라가 패망한 연후에도 조선은 명의 연호를 계속 썼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1886년, 고종25년이 된다.

 그러니까 율곡선생이 청주목사를 지낸지 3백15년후, 후세 사람들이 이를 기려 식수비를 뒤늦게 해 세운 것이다. 이 식수비는 당초에 청주목 동헌인 청녕각 뒷편 뜰에 있었다. 청주읍성도엘 보면 청주목 관아 뒷뜰에 수목이 무성하다.
 율곡 선생이 심은 소나무는 지난 1955년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후에 고사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고사한 소나무를 대신하여 대목(代木)을 심었으나 도시화 과정에서 뒷뜰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선생의 식수비는 그후 민원실 동편으로 옮겨졌고 다시 청원군청 앞뜰로 옮겨져 이름 모를 실비명 비석과 함께 짝을 이루며 동헌 앞 마당을 지키고 있다. 비 비람에 씻긴데다 비를 옮기는 과정에서 기단부가 약간 파손돼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마지막 글자인 소나무 송(松)자가 약간 묻혔다.
 율곡 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과 쌍벽을샟이룬 조선조의 성리학자다. 그는 비록 짧은 기간 청주목사를 역임했지만 재임중 우리나라 향약의 모태가 되는 서원향약(西原鄕約)을 제정, 시행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등 4대 덕목으로 된 서원향약은 기존의 향약을 집대성한 것으로 이황의 예안향약(禮安鄕約)과 더불어 우리나라 향약의 교과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농경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고 지방자치 정신을 고취시킨 향약은 조선사회를 지탱케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그 소나무는 사라졌어도 한 그루 소나무 처럼 고결한 선생의 기품이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식수비에서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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