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범욱 공군사관학교 발전후원회 명예회장

운보의 집 / 중부매일 DB
운보의 집 / 중부매일 DB

'질마'하면 알까 모를까. 농촌에서 쓰던 옛말로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는 깜깜한 말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길마'의 구개음화된 지방방언 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소가 등에 짐을 '지고' 간다는 말에 젖어있다 보니 질마로 머릿속이 굳어 버렸다. 길이 뚫리며 자동차가 대중화되어 소나 말의 등에 짐을 실어 나를 일이 없으니 사라져가는 고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방마다 꾸불꾸불 높은 '재'를 넘으며 질마 같다하여 붙인 이름 그대로 '질마재'가 되었다. 하루한낮 며느리 손녀와 함께 차로 괴산 질마재를 넘으며 질마를 물어보아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터치 하며 며느리 왈 질마가 아니고 '길마'가 표준어라니 피차 모두 공부가 된 셈이다.

충북 청주는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이다. 주말에 찾아온 며느리 손녀의 3대가 한낮 드라이빙 코스로 '초정'을 거쳐 질마재를 넘어 괴산으로 향했다. 화양동으로 가는 질마길 '부흥'사거리 '원조할머니 손 두부' 집에 들린다. 순두부와 청국장에 비지장을 곁들인 점심이 옛날 할머니, 어머니의 손맛이다. 주말이면 외지손님까지 몰려 줄서서 기다려야한다. 인접한 화양구곡엔 조선말기 주자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선생의 사적이 있고, 월북한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극작가 한운사의 고향으로 남모를 향수가 몰려온다. 어린 시절 날 받아 장 담그는 일도 연중행사였으나 아! 옛날이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멈추고 지하 암반수와 국내산 콩으로 발효된 '호산죽염된장'식당에 들려 묶은 된장을 사서 싣는다.

질마재를 다시 넘어서면 증평군이다. 괴산이나 증평이 거기서 거기로 협소한 지역에 정치 논리로 쪼개놓았다. 증평출장소가 군이 되어 가까운 '좌구산'에 자연휴양림을 조성했다. 한낮에는 계곡위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거닐며 사색과 명상에 잠기고 한밤에는 천문대에 올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의 파노라마를 보며 우주여행을 만끽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청정의 공기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유일의 장소가 되었다.

시골길 산등성이를 서너 바퀴 돌고 돌아 넘어서면 '초정'이다. 세계3대 광천수의 하나로 알려진 약수의 본향이다. 안질과 피부병에 좋아 조선 세종대왕이 치료차 머문 곳이다. 세종은 눈병을 치료해 훈민정음을 창시했다니 신비와 창조의 묘약이다. 목욕탕에 들어가 솟아나오는 원천수가 아랫도리를 따갑게 찌르는 약수로 타 지역 온천과는 다르다. 청주시는 인근 문화공원 일원에 '세종대왕 초정행궁'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원소주 공장에 들려 미네랄 생수를 통에 담아 차에 실었다. 한동안 집에서 마시는 식수가 되니 일석이조의 나들이다.

이범욱 공군사관학교 발전후원회 명예회장
이범욱 공군사관학교 발전후원회 명예회장

지호지간 거리에 '운보 김기창'화백이 남긴'운보의 집'이 있다. 청각 장애인으로 근세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다. 여류화가 '우향 박래현'과의 러브스토리가 흐르는 곳이다. 만남, 결혼, 부부 작가로 활동하며 수필도 남긴 인간승리의 장본인이다. 한옥 집과 미술관을 돌아보면 종합예술이 어울린 전당이다. 일제 강점기 친일활동으로 청산세력으로 몰리고 있다.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사진을 김 화백이 그렸다니 초정에 들렸던 대왕의 영상을 머릿속에 환생시킨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월남 방문을 계기로 국방부청사 내에 걸려있던 그의 명화 '적영(敵影:적의 그림자)'도 떼어냈다고 한다. 짧다면 짧은 시공의 역사 속에 순수해야할 예술이 정치논리에 지지고 볶이는 아이러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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