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교회의 십자가상이나 표구사 등지에서 제작 판매하는 예수의 얼굴을 보면 근엄하다는 성자의 이미지 이외에도 상당히 미남형임을 알 수 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에도 예수의 얼굴은 그렇게 캐스팅돼 있다.
 구유의 예수에서 부터 병자를 치료하고 설교하는 장면엔 언제나 풋풋한 인간애가 넘쳐 난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보면 고뇌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가시관을 쓰고 핍박을 받는 모습에선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돌산 언덕을 오를때 베로니카의 수건 사이로 보인 예수의 얼굴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확한 예수의 얼굴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 전해지면서 예수의 얼굴이 베드로 성당 벽화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등의 성화(聖畵)에 묘사돼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전해져 일반화된 예수의 얼굴은 사실적 기법이라기 보다는 제자 또는 세인들에 의한 다분히 기억적이고 성자로서의 의례적인 일면이 개재돼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영국의 연구팀이 예수의 얼굴을 재현하여 상당한 흥미를 끈다. 컴퓨터와 법의학 기술을 동원하여 재현한 예수의 얼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예수의 얼굴과 상당히 다르다.
 유대인의 두개골을 토대로 첨단기술을 접목했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예수상과 거리감이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어느 모습이 더 정확한지는 좀 더 두고 지켜 볼 일이다.

 폴란드 우찌시 박물관엘 가 보면 고대에 출토된 목제 예수상이 여러점 있다. 십자가상도 있고 설교하는 장면도 있는데 이중 부처의 반가사유상 처럼 [생각하는 예수상]이 눈길을 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반쯤 걸터 앉아 오른손을 얼굴에 대고 왼손을 무릎에 가만히 얹져놓으며 깊은 사색에 빠진 모습은 영낙없이 부처의 반가사유상을 연상케 한다. 도대체 이런 희귀한 양식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 해답을 정확히 구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고대 동서 문화의 교류 흔적이 아닌가 싶다.

 동방의 문화가 서방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간다라 미술이 생겨났듯 서방의 문화가 동방으로 옮아가는 길목에서 헬레니즘과 더불어 [생각하는 예수상]이라는 기이한 작품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보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 석가, 모하메드, 공자 등 세계의 성인은 모두 동방 사람이다.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이 있듯 정신세계의 발원지는 역시 동방이다. 그런 동방에서 숱한 종교분쟁으로 총성이 멎을날 없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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