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 뉴시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 뉴시스

'직원에게 반말 하는 손님, 카드나 돈을 던지는 손님에게는 음료를 팔지 않겠습니다.' 지난 3월 제주도 여행을 하며 카페에 들렀다. 빈티지한 소품으로 꾸며진 예쁜 공간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SNS에서도 인기가 많은 곳이라 오픈하자마자 금세 자리가 꽉 찼다.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러 갔다. 메뉴판보다 계산대 앞에 붙여놓은 안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직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카드나 돈을 던지는 사람에게 음료를 팔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이 카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내문이 썩 유쾌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재벌가의 갑질 논란이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갑을 관계에서 '갑'의 횡포를 우리는 '갑질'이라 부른다.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을에게 부당행위를 취하는 것. 이 문제는 고질적인 우리사회의 병폐이다. 나는 글을 쓰는 프리랜서이다. 프리랜서이기 전에는 고만고만한 회사를 8년 넘게 다녔다. 지금의 벌이는 예전 같지 않지만 갑질에서 만큼은 해방되었다.

모 회사에 다녔을 때 일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개인사업장이었다. 근로계약서와 4대보험 없이 일을 시작했다. 그 회사에 다닌 지 1년쯤 지났을 때 사업주에게 4대보험에 가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업주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가입을 미루었다. 결국 나는 그 회사에 상시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세와 원천징수를 제하고 급여를 받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4대보험은 월 60시간 이상, 한 달 이상 근무 시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다. 더불어 월 60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근로자라도 3개월 이상 근무를 할 경우에는 의무가입을 해야 한다.)

거래처 미팅이 있을 때엔 세상 교양인처럼 굴던 사업주였는데 사석에서는 나에게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겠지. 이 작은 조직에서도 견디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탓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결국 그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 후 나는 어디에도 하소연을 할 수 없었다. 업계를 떠나지 않는 이상 2차 피해자는 고스란히 을의 몫이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된다면 나는 그런 사업주가 되지 않기로.

이처럼 갑질문화는 재벌가나 대기업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1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이나 택배기사에게 갑질을 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도 갑질문화가 만연해 있다. 제주도의 한 카페에 붙어있던 안내문도 갑질문화가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참고 넘어갈수록 우리사회에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낳고,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곳곳에 뿌리 내린 갑질을 바꿀 수 없다고 그냥 두고 볼 일 만은 아니다. 이제 을이 나설 차례다.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갑질문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을의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기 위해 원인과 증거를 분석해야 한다. 갑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이었는지 전문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투운동도 그랬지만 갑질고발 역시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기본을 지키는 사회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존중과 배려는 사업주와 직원 관계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봄바람이 불어오듯 따뜻한 배려 문화가 우리사회에 널리 확산됐으면 좋겠다. 결국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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