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수줍게 핀 명자나무꽃 / 뉴시스
수줍게 핀 명자나무꽃 / 뉴시스

화사한 진 다홍색과 연두색의 조화로움으로 앞마당이 환하다. 해마다 봄이면 피는 명자나무 꽃은 신선하다. 거실에 있는 잉꼬의 모양과 어찌 그리 흡사하던지 빨간 주둥이와 연두빛의 날개와 회색 나무 둥치의 발모양까지 닮았다. 잉꼬도 산책을 시켜 주고 싶어서 새장을 들고 나와 명자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어느 것이 새이고 꽃인지 분간이 어렵다. 한참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새의 울음소리와 꽃에 취하고 말았다. 모처럼 꽃과 어우러져 들 차를 즐기고 싶다. 탁자를 놓고 보자기를 깔았다. 의자 두 개를 갖다 놓고 남편을 부른다. 다기에 물을 붓는다. 낭랑한 물소리가 새의 노래 소리처럼 들린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 마음을 싣고 살랑거리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벗 삼아 잉꼬를 닮고 싶어서 남편을 불렀지만 응답이 없다.

명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고 꽃말은 평범, 순진, 겸손이라고 한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나무이다 꽃말처럼 평범하면서도 우아하고 예쁘지만 겸손을 몸에 지닌 듯 사알 짝 피였다 지는 꽃이다. 흰색 분홍색 아리보리 색까지 분명히 빨간색을 심었고 가지를 찢어 여기저기 심었는데 다양한 색으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아마도 선천적인 DNA가 여럿인 듯싶다. 단군의 자손이 여러 가지 형태로 살고 있듯이... ... .

노란 수선화와 하얀색의 매화와 높은 가지에 팝콘 터지듯 피는 살구꽃과 연분홍 앵두꽃 진분홍색 박태기까지 꽃 잔치가 풍성하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사철나무 잎이 봄을 부르고 붓꽃 잎이 당차게 올라오며 수런수런 꽃씨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봄은 무한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젊은 날 가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였다. 병원비 때문에 빚에 쪼들려 세일즈맨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시골마을 울타리가 온통 환하게 명자나무로 단장을 한 고택을 보게 되었다. 명자나무집 주인은 꽃만큼 아름다웠다. 그날 얻어다 심은 명자나무와 같이 한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꽃이 곱다는 분이 있으면 난 그때의 명자나무집 아낙처럼 명자나무가지를 분양해 주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날은 뿌리가 당뇨에 약이 된다고 얻으러 온 분도 있었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우리 집 앞 뒤뜰은 물론 밭 여기저기에 명자나무는 찔레꽃처럼 피어나 있다. 꽃이 피고 나면 동그란 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술을 담기도 한다. 화려하고 요염한 "산당화" 라고도 불리는 이 꽃을 도련님 방 앞에 심으면 마음이 설레어 책을 읽을 수 없고 아기씨 방 앞에 심어 놓으면 바람이 난다는 설이 있어 멀리 바라 볼 수 있도록 밖에 심었다는 이 꽃을 우리 집 울타리로 삼았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의 고비고비를 넘으며 사는 것이었다. 신혼 초 짝이 병들어 가난과 싸우며 허우적거렸던 일이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들고 오는 상장을 비타민처럼 여겼던 일이 엊그제 같건만 고희를 코앞에 두고 신바람 나게 살아온 지난날들은 보석처럼 빛이 난다.

터 너른 이 집을 장만하고 희열에 넘쳐 집수리를 했었다. 고달픈 줄 모르고 사업을 한다고 뛰어다녔던 젊은 날의 하루해는 짧았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주부로 사업가로 어미의 자리를 이탈 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평행선을 달려 왔으니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카텍킨이 풍부한 녹차의 쓰면서도 떫고 밋밋하면서도 은은한 맛을 혀끝으로 음미하며 인생은 추억을 먹고산다고 하지 않는가. 명자나무 꽃처럼 곱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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