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형.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쓰오. 그동안 별고 없으리라 믿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기 때문만은 아니오. K형의 그 특유한 친화력과 추진력이 어려운 우리 사회 속에서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리라 믿기 때문이오.
 헌데 요즘들어 부쩍 K형과 어렸을적 뛰어놀던 생각이 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서 만은 아닌것 같소. 우리주변이 웬지 온통 어려움만이 가득한 것 같아 답답하기 때문인것 같소.
 K 형이 고향을 떠난지가 벌써 몇해요.
 청풍명월의 우리 고장도 지난 77년이후 24년만에 인구가 1백5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발전을 하긴 많이 한것 같소. 헌데 어느 지역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무원들이 저녁도 외식을 하자니 이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오. 참 힘들게들 살고 있소.
 그래서 그런지 아련한 추억이 깃든 옛날이 더욱 그립소.
 당시 국민학교였지, 지금은 초등학교라 하지만 말이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우유가루와 옥수수 빵과 별사탕 몇개든 건빵이나 유과를 먹는 것이 유일한 간식이요 어쩌다 구호품으로 나온 초코렛을 하나 얻어 먹으면 그날은 참으로 횡재한 날로치던 어린 시절이었잖소.
 K 형과 학교앞 도랑에 들어가 잠자리 잡고 무심천둑에 나가 풀밭에서 미끄럼타고 멱감던 시절. 봄 소풍때면 김밥 몇개와 삶은 계란과 사이다 한병에 그저 좋았고 우리는 그것이 행복한 것으로만 여겨던 어린시절 말이오.
 이제와 생각하니 어릴적 보릿고개등 당시의 그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자식들에게 만은 잘해 주시려던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철부지였던 것을. 허긴 자식 낳아 봐야 부모마음 안다고 했지만 말이요.
 K 형. 세월은 참으로 덧 없는 것 같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어려운 이시대. 이러한 사회를 버텨온 어느 40대 회사원의 목소리를 K 형에게 한번 전하고 싶소.
 K 형 나는 그 회사원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오. 그러나 그 회사원의 애타는 마음은 누구 보다도 이해를 할것 같아서 말이요.
 스스로를 「불쌍한 40대」라고 한 그 회사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소.
 『동무들과 학교가는 길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학교 급식빵을 얻어가는 고아원 형제들이 싸움을 가장 잘하는 이유를 몰랐던 그때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또 생일때나 되어야 도시락에 계란하나 밥에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소풍날은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을 위해 사탕 반봉지를 남겨와야 하는 걸 이미 알았던 그 시절도 이름없는 세대』였다고.
 오직 한 길로만 열심히 살아온 이 회사원은 회사의 중견간부로 자리를 잡았으나 어느날 『오래전부터 품어온 불길한 예감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잠남 자고 나가는 하숙생같은 우리들.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세대라 부른다』고 하오
 이 회사원이 겪는 아픔이 바로 이땅의 40∼50대들이 겪는 아픔이 아닌가 하오.
 고속성장의 막차에 올라 탔다가 이름 모르는 어느 간이역에 버려졌다는 이땅의 중년세대들에게도 희망이 있기를 같이 기도좀 해주길 바라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