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시아영화는 미국 전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바 있다. 「아시아 영화의 미국 공습」이라는 과장마저 가능했던 약진의 주역은 중국어권 영화들이었다. 홍콩의 「화양연화」 대만의 「하나 그리고 둘」「와호장룡」 등은 유수한 비평가 협회나 주요 언론매체가 선정하는 2000년 최고의 영화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 미국 콜럼비아사가 돈을 대고 대만ㆍ홍콩ㆍ중국의 영화인력이 힘을 모아 만들었던 「와호장룡」의 돌풍은 놀라웠다. 최초의 아시아출신 감독 및 작품상 후보 지명 등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오스카전야를 흥분으로 달궜으며 4개의 오스카를 차지하는 선전을 펼쳤다. 흥행면에서도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 1억달러 고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같은 중국어권 영화들의 미국 진출은 종전 칸ㆍ베를린ㆍ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구축한 세계 주류영화로서의 위상에 더해 이들 영화들의 산업적 경쟁력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지역은 전세계에 영화를 공급하고 수익을 빨아들였을 뿐 시장을 세계영화계에 내어주지는 않아왔다. 그런데 헐리우드의 독과점적 권력에 기대 비영어권 영화들과 호혜관계 구축을 외면했던 미국 관객과 시장에 맞서 이들 영화들은 당당한 소구력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 영화협회가 「「와호장룡」의 전세계적 호평」을 지난해 헐리우드 5대 주요사건으로 선정하고, 많은 중국인들이 오스카 무대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한국관객들은 착잡한 심경을 감출수 없었다. 일본, 중국, 이란 등 아시아 영화들이 예술성과 상업성 양면에서 독보적 위상을 제고시키고 있는 한편으로 한국영화는 여전히 세계영화계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엄연한 자각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와호장룡」의 돌풍에는 비교할게 못된다고 하지만 지난해 「춘향뎐」「인정사정 볼것없다」「거짓말」 등이 소수 예술영화관을 벗어나 미국현지에서 일반개봉된 것은 충분히 고무적이다.
 여기에 헐리우드에서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인 이명세감독에 이어 강제규감독도 헐리우드의 메이저 영화 제작ㆍ배급사인 콜럼비아 트라이스타와 제작비 4백억 규모의 SF액션영화를 찍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특히 강감독은 콜럼비아사의 배급망을 통해 자신의 작품 「쉬리」를 미국전역에 개봉할 것도 합의했다. 「쉬리」의 8월 개봉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배급망을 타고 미국전역에 개봉되는 아시아권 영화로서도 이례적인 일로 기록될만하다.

 요 몇년사이 한국영화는 전례없는 활기를 선보이고 있다. 99년 「쉬리」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올해는 「친구」가 놀라운 흥행력을 과시하며 바야흐로 한국영화 시스템이 고도화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영화ㆍ영화인의 미국진출은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검증하고 제고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영화가 대륙의 장대함을 웅혼한 기상으로 형상화하고, 이란영화가 지극한 무심함을 통찰력으로 승화시켰듯, 이번 기회에 우리만의 독창적인 미학적 정체성을 정립, 전세계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확고히 정립시키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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