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토기나 기와, 그리고 얼핏 볼품없어 보이는 물건들만 굴러다닐 뿐 별다른 구조물도 없는 문화유적 발굴현장은 현대인들에게 묘한 소회를 안겨준다. 붉은 빛 감도는 황토 위에 마치 토지구획작업을 하듯 가로 세로로 땅이 얕게 파여있는 그 모습은 일종의 정서적 충격마저 전해준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함께 했던 주변의 덤덤한 산과 들이 어느날 갑자기 수백ㆍ수천년 전의 시간을 증언하는 놀라운 풍경을 펼치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발굴조사를 벌여오다 21일 조사결과를 발표한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숭선사터도 모처럼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충청대 박물관이 조사를 맡은 숭선사터는 고려사 2권에 그 존재가 기록된 고려초 한수 이남의 최대 사찰이다. 이 책에는 태조 왕건의 아들인 고려 4대 임금 광종이 자신의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됐다고 적혀있다. 여기에 고려 건국 초기 호족의 발호를 막기 위한 왕권강화 차원 및 충주지역과의 유착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국찰」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중심사역인 금당지의 규모가 파악됐고 성분 미상의 액체가 밀봉된 분청사기 장군 1점과 금동 보살상 1점, 지붕의 윗면 가장자리를 장식했던 백자모정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금당지의 경우 동서 15.29m, 남북 14m의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출토된 명문와를 통해서는 1182년, 1192년, 1579년 등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게됐다. 문숭리 야산 골짜기를 다 아우르는 거대규모와 고급 건축자재 사용, 와당 등의 웅장하고 정교한 양식으로 미루어 지극한 정성으로 만든 「계획 사찰」이었다는게 현장을 지켜본 이들의 지적이다.

 또한 충북지역서 최초로 출토된 금동 보살두는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초반의 보살상으로 관심을 모았고, 지붕의 윗면 가장자리를 장식했던 백자모정의 출토는 전례가 없는 희귀한 일로 주목을 받고있다.
 신명순성왕후는 당시 충주지역의 호족인 유긍달의 딸로 태조왕건이 호족연합정책의 일환으로 세번째 부인으로 입궐시킨 인물. 마침 텔리비전 드라마 「태조 왕건」을 통해 가상으로나마 낯이 익어서 그런가 친근한 느낌을 준다. 앞으로 청풍면 드라마 세트장과 함께 관광상품화하는 방안도 검토할수 있을것 같다.

 이번 숭선사지 발굴을 지휘한 충청대 박물관측은 고려초 융성했던 충주유문과 고려왕실이 관련된 최초의 유적으로 역사적ㆍ미술사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충주지역은 미륵사지, 중앙탑 등과 더불어 중요한 문화유적을 풍부하게 보유한 역사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더욱 성가를 높이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지역은 전체 절터 중 극히 일부인 금당지 주변일 뿐 나머지 지역은 경작지로 당장 확대발굴이 어려운 형편이다. 또한 장마철을 앞두고 유적의 유실도 우려되는 실정이니 사적지정과 함께 주변 사유지 계속 발굴에 필요한 예산지원등이 곧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창건 당시의 가람배치와 중심사역에 대한 성격 규명 뿐만 아니라, 8백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만나게 될 숭선사에 얽힌 크고 작은 사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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