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소상공인] 48. 중앙모밀 정권택 사장
1969년 옛 중앙극장 인근서 테이블 3개 분식집 출발
83년에 건물 지어 정착 '국수' 주력… 3가지 메뉴 운영
부친 정운종 옹 '최상의 식재료 사용' 철학이 장수비결
수십년 전 손님이 자녀·손주 손잡고 방문할 땐 '뿌듯'

올해로 50년 된 '중앙모밀' 정권택 사장이 중앙모밀만의 메밀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1969년 영업을 시작한 아버지 정운종 옹의 대를 이어받아 정 사장은 100년 가업을 잇는 가게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가장 서민적인 음식 '국수'. 후루룩 뚝딱 먹을 수 있는 국수 한 그릇에도 '정성'과 '전통'을 담으면 '역사'가 된다. 
 
청주시 상당구 영동 '중앙모밀'은 50년 역사의 전국 3대 메밀국수집이다. 초록색 간판에 적혀있는 'since 1969' 문구가 훈장처럼 빛난다.
 
"'변함없는 맛'이 장수비결이죠. 중앙모밀은 '고향' 같은 곳이에요. 고향집에 온 것처럼 반갑고, 늘 그 자리에 있고, 엄마가 해주는 밥처럼 '고향의 맛'을 먹을 수 있으니까."
 
중앙모밀 정권택(56) 사장은 '50년 변함없는 맛'을 '고향'에 비유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청주중앙극장과 청주시청 사이에 위치한 중앙모밀은 추억의 장소였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미팅을 하던 곳이자, 중앙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나와 출출한 배를 채웠던 야식집이고,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를 해결하던 곳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줄을 서서 기다리기 일쑤다.
 

여름에 더 생각나는 '중앙모밀' 메밀국수는 살얼음이 떠있는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메밀면을 넣어 먹는다.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없애기 위해 무, 파를 함께 내준다. / 김용수  

메뉴는 딱 3가지. 모밀국수, 모밀우동, 모밀짜장. '모밀'은 '메밀'의 함경도 사투리다.
 
"뭐든 전문적으로 하려면 '단순화'해야 해요. 메뉴가 다양하면 그 맛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덜 쓰게 돼요. 그래서 저희는 메뉴가 3가지뿐입니다."
 
오전 11시, 부친 정운종(92) 옹이 계산대 앞에 자리를 잡는다. 중앙모밀 1대 사장인 정옹은 주문내역을 포스에 찍고 결제를 받는 모습이 낯설지도, 서툴지도 않다. 오전 11시를 넘기자 약속이나 한듯 사람들이 삼삼오오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중학교 때 우리집에 빵 먹으러 왔던 이들이 이제는 자녀들과 같이 오고, 손주들 데리고 와요. 반갑고, 고맙지요."(정운종)

 

청주시 상당구 영동 옛 중앙극장 인근에 위치한 '중앙모밀'은 50년 전통의 전국 3대 메밀국수집이다. 청주시민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다. / 김용수 

정옹은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1969년 청주중앙극장 맞은편에서 작은 분식집을 차렸다. 당시에는 테이블 세 개가 전부였고, 아내와 빵과 국수, 분식을 팔았다. 가게 이름도 '중앙제과'였다. 
 
"호두과자를 잠깐 만들어 팔았는데 당시 인기가 많았어요. 지금도 그 시절 호두과자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정운종)
 
호두과자 입소문이 나면서 작은 가게 앞에는 긴 줄이 이어지곤 했었다. 이후 1975년 청소년광장 맞은편으로 가게를 옮겼다가 1983년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다. 빵을 접고 국수에 주력하면서 가게 이름을 '중앙모밀'로 바꿨다.
 
"제가 충북대 81학번인데 83년에 지금의 건물을 지어서 이사를 왔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대로인 거예요. 장소도, 간판도, 테이블도, 내부 인테리어도 다 그대로에요."(정권택)
 
국수 맛도 변함이 없지만, 가게 안의 액자이며, 테이블과 의자도 1983년 모습 그대로다. 세월을 먹은 집기류들이 정겹다.
 
"오랜만에 오신 분들이 '예전 맛 그대로네요' 할 때가 가장 기분 좋아요. 일본인들도 와서 맛보고 '맛있다'고 할 때 기분 좋지요."
 

여름에 더 생각나는 '중앙모밀' 메밀국수는 살얼음이 떠있는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메밀면을 넣어 먹는다.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없애기 위해 무, 파를 함께 내준다. / 김용수  

장수비결로는 최상의 식재료를 꼽았다. 식재료만큼은 깐깐하게 고르고 '최상급'을 고집한다. 강원도 봉평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온 메밀가루를 쓰고, 간장도 화학간장이 아닌 100% 양조간장을 쓴다. 경남 마산 멸치 등으로 육수를 내고, 메밀의 찬 성질을 없애기 위해 함께 먹는 무, 파 역시 국산이고 최상급이다.
 
"내 가족이 먹는 음식처럼 항상 가장 좋은 재료를 쓰니까 손님들이 믿고 오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산 메밀을 쓰는 곳도 전국에 몇 없을 거예요."
 
좋은 식재료 사용은 부친께서 항상 당부해온 오랜 철학이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면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고, 언젠가는 알려질 것이라는 것이다.
 
정 사장은 반죽부터 면발 뽑기, 면 삶기, 재료준비 등 주방일을 도맡아 한다. 메밀은 얼음물로 수없이 치대고 눌러 반죽한다. 전날 저녁에 반죽해 숙성한뒤 다음날 먹기 직전에 기계로 뽑아 삶아낸다. 그래야 면발이 쫄깃하고 탱탱하다.
 
"사장이 못하는 게 있으면 안돼죠. 저는 제 손으로 반죽하고 면발 뽑고 삶고 다 해요."
 

1969년 영업을 시작해 1983년 지금의 자리에 안착한 '중앙모밀'은 1983년 당시 인테리어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커다란 메밀밭 사진이 걸려 있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액자이며, 테이블과 의자 등이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김용수

정 사장은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9시에 영업을 마친다. 메밀국수가 제철인 3~9월에는 연중무휴, 그 외에는 월요일 하루를 쉰다.
 
정 사장은 제빵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대학졸업 후 제빵회사인 '샤니'에 입사했고, 5년간 서울 파리크라상에서 점장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 아버지일을 돕기 위해 청주로 내려왔다. 아버지의 손맛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당시 아버지 가게에서 빵을 팔 때였는데 서울은 제과제빵 수준이 높았어요. 제가 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생각해보면 '운명' 같아요."
 
외아들인 그는 가업을 잇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20~30년 뒤에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바통을 넘길 계획이다.
 
"오래된 가게이며 극장이며 하나둘 문을 닫고 있어요. 일본은 100년, 200년, 1천년 역사를 이어가잖아요. 중앙모밀도 100년, 200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물림하고 싶어요. 역사를 이어가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모밀은 영화에도 등장할 예정이다. 안성기, 이서진 주연의 영화로, 오는 8월께 가게에서 배우들이 유년시절 밥먹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다.
 
무병장수, 행운, 기쁨의 지속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국수. 긴긴 국수면발처럼 중앙모밀도 50년 역사를 넘어 100년, 200년 이어가길 기대한다.

여름에 더 생각나는 '중앙모밀' 메밀국수는 살얼음이 떠있는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메밀면을 넣어 먹는다.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없애기 위해 무, 파를 함께 내준다. / 김용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