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하거나 하천가를 거릴다 보면 이름을 모르는 풀들이 너무나 많다. 이처럼 이름모를 풀들을 일컬어 우리는 잡초, 즉 잡풀이라 한다. 우리가 단지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하찮게 생각하고 잡초라 하지만 이름모르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보라.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이름이 있고 그 생명 또한 귀중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잔디밭에는 잔디만 있어야 한다.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잔디 이외의 풀들은 잡초로 여겨 모두를 뽑아낸다. 또 논에는 벼만 있어야 한다. 벼 이외의 피나 다른 풀들은 벼의 생육을 위해 뽑아내야 한다. 이처럼 잔디밭이나 논에서 뽑혀진 잡초나 피도 하나의 식물로서의 존재할 가치를 갖고 있다.
 예를들어 「피」란 식물은 포아풀과의 일년초로서 「돌피」의 개량종으로 밭이나 습한 곳에 재배하며 높이 약 1m. 여름에는 담록색 내지 자갈색 꽃이 거칠고 크게 핀다. 그리고 영과는 식용과 사료로쓰인다. 그러나 「피」가 논에서 자랄때는 쓸모없는 잡초일 뿐이다.
 「인디안 들에게는 잡초란 말이 없다. 백인들이 싫어하는 풀을 잡초라 했을 뿐이다.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풀들에게는 고귀한 생명력이 있을 뿐이다. 인디안들은 대자연을 사랑한다」고 어느 인디안 추장이 말했듯, 우리가 잡초로 여기는 풀을 비롯해 모든 식물과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그 자체가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또 등산길이나 도로에서 자라는 그많은 이름모를 풀. 즉 우리가 잡초라하는 풀들은 아무리 짓밟혀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난다. 이렇듯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이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잡초같은 인생」이라며 그 끈질긴 인내와 용기를 미화 하기도 한다.
 따라서 「잡초」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모든것이 「있어야할 곳에 있을때」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생명력을 고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나, 「있지 말아야할 곳에 있을때」우리는 그것을 단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듯, 우리들은 서로 서로가 어우러져 사회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웃을 위해 나를 생각하거나, 나를 위해 이웃을 생각하거나 우리모두가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보다더 밝은 건강한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허나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사회속에는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건강한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굳건하게 자리잡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잡초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부정과 비리를 일삼고 패륜등 도덕윤리를 짓밟고 기생충같은 생활을 하는 「잡초같은 놈」도 있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사회생활속에서 우리 모두는 이제 자신의 모습과 위치를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치 경제를 비롯 각계의 사회지도층인사는 물론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들과 일선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근로자들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서있는 자리, 또 내가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나는 혹시「뽑음」의 대상인 「잡초」이며 「잡초같은 놈」의 생활은 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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