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중년들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대부분 교회를 찾았다. 그날 만큼은 공책과 노트를 받았고, 그리고 사탕과 과일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그 만큼 그 시절 교회는 먼 발치가 아닌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같은 현상은 초기 교회 선교사와 목회자들이 한 손에는 성경, 또 다른 손에는 계몽서를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이 땅에 서양 신문물을 도입하고, 또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는 등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사랑과 봉사로 감싸 안았다. 그들의 눈에 이 땅의 민초들은 선교 대상을 넘어 누군가가 이끌어줘야 할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이같은 성과로 국내 교회는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교회로부터 『성령의 기적이 한국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발적인 신도 증가세를 보였다. 일부 목회자들은 이에 고무, 『예수님이 재림한다면 그곳은 동방의 한국일 될 것이다』는 호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는 갈수록 물량화, 세속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회 첨탑은 「낮은 곳으로 임하라」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갈수록 높아가고 있고, 교회 건물은 날로 대형화되고 있다. 또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 세습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기복신앙이 믿음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올해가 김교신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이미 50여년 전에 『성경을 읽는 바로 그 자리가 교회』라는 말로 무교회주의를 주창했다. 왜 그는 무교회주의를 주장했을까. 한국 교회가 냉담자들을 도로 교회로 불러 들이려면 더 이상 높은 곳을 지향해서는 안된다. 땅끝, 끝날까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선교의 못자리 역할 계속 수행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