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명훈 소설가

무심천의 야경 / 중부매일 DB
무심천의 야경 / 중부매일 DB

답사 여행은 국내외를 통해 제법 다녔지만 내 고향 청주에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무심천의 발원지 답사. 청주의 심볼의 하나이자 내 마음 속에 아련하게 깃든 무심천. 그 장구한 길이에서 적당한 토막 정도나 봐왔던 나는 마음이 끌려 신청지에 바로 콜했다.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의 기획의 일환으로 충북참여연대 주관이었다. 회원이 아닌 나는 답사일에 모르는 일행들에 섞여 관광용 미니 버스에 올랐다.

"저 능선 보이지요. 한남금북 정맥이예요. 저기에 물방울이 떨어져 남쪽으로 흐르면 무심천으로 흐르지요. 무심천의 물은 미호천을 지나 금강으로 빠져나갑니다. 물방울이 북쪽으로 흐르면 달천을 지나 남한강으로 흐르고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으로 빠지지요." 초롱이네도서관의 총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윤송현 씨의 설명에 귀가 즐거웠다. 무심천이 금강과 연관되는 줄만 알았는데 한강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절묘한 별리를 한 것이라니! "서해에서 다시 만나지요. 갈라져 각기 물줄기를 타고 가다가 말입니다."

그의 이어진 말이 한 편의 시처럼 와닿았다. 미니 버스는 도로를 달리다가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조금 후에 멈춰섰다. 충북참여연대 상임고문인 강태재 대표가 해설을 해나갔다. "무심천의 발원지를 다섯 곳으로 보는데 여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추정리 2번지예요." 계곡인데 말라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을 막상 보니 감격스러웠다. 달달한 시간을 보내다가 미니 버스에 올랐다. 산길을 굽이굽이 달렸다. 청주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다. 강원도의 산골이나 오지의 느낌이 났다. 작은 마을 위쪽의 정상 근처에서 내렸다. "여기는 산정말이라고 해요. 샘이 두 개가 있죠. 윗샘과 아랫샘. 모두 용출수이지요. 땅에서 솟아오른단 뜻이예요. 그러기에 이곳 역시 발원지라고 주장되죠."

샘물을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퍼 마셨다. 오래 전에 마셨던 물맛이었다. 아까는 발원지가 그곳 같더니 지금은 이곳 같았다. 윗샘과 아랫샘을 견줘가며 역시 좋은 시간을 보낸 우리는 버스에 올라 또다른 산길을 달렸다. 하차해 걸어나갔다. 물웅덩이를 건넜고 홍도화, 산벚나무, 싸리꽃이 연두빛 신록과 어우러졌다. 내암천의 탑산이골이라는 곳엔 무심천 발원지라고 새겨진 석비마저 세워져 있었다.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그 부근에서 갈랫길로 주욱 올라가면 또다른 발원지 후보인 뫼서미골이 있다고 한다. 선두 그룹은 그곳에 다달았지만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길을 놓쳐 나중에 본 사진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나머지 한 곳은 한계 저수지 뒤 안건이 고개 쪽 계곡이라는데 멀기에 그곳까진 가지 않았다.

이번 여행이 너무도 값진 가운데 에티오피아가 떠올랐다. 청나일강이 비롯되는 타나 호수에 갔었다. 최초의 물방울을 따지자면 더 거슬러 가야겠지만 그것들이 타나 호수에 모여 청나일강의 발원지가 된다. 그곳에 서자 풍경들도 기가 막혔지만 이전에 카이로와 룩소르 등지를 돌며 느꼈던 이집트 문명이 장난감처럼 작아져 보였다. 발원지에 서면 달리 보인다. 그 아래의 것들이 통시적, 메타적, 초월적으로 보이는 시각이 생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발원지에 대한 상상과 모험, 도전을 거의 상실한채 살아간다. 마음이든 우주, 자아든 발원지에 대한 꿈은 소중하다. 그것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끼리끼리 아웅다웅하며 벌어지는 뒤엉킴과 혼란, 조각난 파편들이 한 장의 아름다운 지도 속에 보이게 된다. 무심천의 발원지 답사는 꿈에의 답사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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