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작농의 아내' '워커 에반스 이후'로 차용
타인의 고통 상품화.소비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

Walker Evans-Tenant Farmer's Wife. 1936 (좌) Sherrie Levine-Untitled(After Walker Evans), 1981 (우)
Walker Evans-Tenant Farmer's Wife. 1936 (좌) Sherrie Levine-Untitled(After Walker Evans), 1981 (우)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1936)와 세리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를 언급했다. 필자는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19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이 입안한 자료 수집사업에 참여하여 미국의 경제 불황 실태를 기록했던 사진들 중의 하나로 소개했다. 1939년 워커 에반스는 대표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 '미국의 사진(American Photographs)'을 발행한다. 

문득 벤야민이 '사진책 이상의 것'으로 평가했던 아우구스트 잔더의 '시대의 얼굴, 20세기 60명의 독일인'(1929)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워커 에반스의 사진집 '미국의 사진'은 아우구스트 잔더의 '시대의 얼굴, 20세기 60명의 독일인'을 '미국식' 버전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에반스의 사진집 '미국의 사진'은 사라질 독일사회의 초상을 담은 잔더의 '시대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사라질 미국사회의 초상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보조수단으로서의 사진'을 넘어 '사진으로서의 예술'에 주목해 그 사례로 초상사진에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는 잔더의 인물사진을 들었다. 기억나시죠? 네? 까먹었다고요? 필자는 잔더의 '석탄배달부'와 '젊은 농부들' 그리고 '제과 요리사' 또한 '잡부'를 연출된 사진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는 어떨까? 일단 에반스의 유명한 말부터 인용해 보기로 하자. 

"나는 내 눈을 교육시키고, 눈이 필요로 하는 눈의 굶주림을 유지시키려고 거리로 나간다. 내 눈은 굶주렸다." 에반스의 굶주린 눈이 찍어낸 '소작농의 아내'는 목조로 지어진 창고 같은 건물에 기대어 있다. 혹자는 '소작농의 아내'를 '고통과 궁핍함 그리고 비참함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녀는 '소작농의 아내'의 '마른 몸'에 주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른 몸이 곧 '고통과 궁핍함 그리고 비참함의 상징'을 보장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에반스가 소작농의 아내를 '고통과 궁핍함 그리고 비참함의 상징'으로 찍고자 했다면, 그는 농장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작농의 아내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을 얼굴도 세수를 하고 헝클어진 머릿결도 다듬고 포즈를 취했다. 

와이? 왜 에반스는 소작농의 아내를 현장감을 강조하지 않고 연출된 사진으로 찍은 것일까? 필자는 잔더의 연출된 사진에 대해 (수잔 손택의 목소리를 빌려) 잔더가 특히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을 촬영할 때 그들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연출을 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에반스 역시 소작농 아내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연출해 촬영한 것이 아닐까? 

덧붙여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는 잔더의 '석탄배달부'와 마찬가지로 연출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역사적인 현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렇다면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복제한 세리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는 어떤가? 우리는 눈으로 그들의 사진들 사이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리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는 '눈'이 아닌 '머리(사유)'로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와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 사이의 차이는 명제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레빈이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복제한 자신의 사진에 똑같이 '소작농의 아내'라는 제목을 명명했다면, 레빈의 사진은 '도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레빈은 그녀의 사진을 '소작농의 아내'가 아닌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로 명명했다. 따라서 우리는 레빈의 사진이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복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레빈의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다름아닌 제목에 표기된 '이후(After)'이다. 레빈은 '워커 에반스 이후'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웨스톤 이후', '마르셀 뒤샹 이후', '만 레이 이후', '이브 클랭 이후', '말레비치 이후'도 작업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레빈이 복제한 작가들이 모조리 남자란 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성'의 권위(독창성)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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