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출마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04.19. / 뉴시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출마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04.19. / 뉴시스

참여민주주의는 지난 세기말 등장한 대표적인 대안의 민주주의 이론이다.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하는 정치적 슬로건 정도로 참여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참여민주주의 이론의 근간에는 2천5백년 전의 고대 아테네 민회가 있다. 아테네 혈통을 가진 모든 성인 남성들이 민회에 모여 아테네의 의사를 결정한 것처럼, 참여민주주의자들은 일반 시민들이 직접 모여 마을, 지역,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일상화된 여러 폐해들, 즉 실질적인 정치엘리트와 관료들의 정치지배, 정치의 상층계급 편향적 운영, 정치권력과 기업권력의 유착,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일반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투표 불참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즘 언론에 가끔 등장하거나 실제 일부에서 시도되기도 하는 주민참여예산제, 공론화위원회, 주민자치제, 시민대표제 등은 참여민주주의 이론에서 유래하거나 그의 변형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 이론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 고대 아테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과연 2천5백여년 전의 아테네 민주정체를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자치모델은 아테네와 같은 도시 공동체에서는 가능하지만, 규모가 너무 커진 현대 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모여 국가의 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불가능하고, 일반 시민들이 대표자를 뽑아 그들로 하여금 정치를 수행하게 하는 엘리트-대의모델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모의 문제는 그동안 치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치명적 한계에 숨통을 터준 것이 바로 지난 세기말부터의 컴퓨터·인터넷·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다. 일반 시민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 모이지 않고도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표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고, 확실히 이러한 기술의 변화는 참여민주주의의 현실적 가능성을 높게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참여민주주의건 SNS민주주의건, 현대적 시민-자치모델에 대하여 여전히 회의적이다. 6천 내지 3만명 정도가 참여했던 아테네 민회와 그보다 수십 수백 배가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현대의 공론장은 시민과 자치의 가치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수백 수천만 명중에 1명이라는 사실은 구성원에게 정치적 참여욕구와 정치적 효능감을 주기 어렵고, 아테네와 같은 대면이 아닌 수천 수만 명이 익명으로 참여하는 SNS상의 논의는 사려 깊은 토론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이념적 편 가르기와 그에 기반을 둔 일방적 추천/반대 누르기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 적발된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댓글 조작과 드루킹의 공감수 조작 사건은 SNS민주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최용현 변호사
최용현 변호사

그러나 여기서 역으로, 고대 아테네인들과 그들의 민회를 너무 이상화 해서도 안된다. 많은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고대 아테네에서도 민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민회가 열리는 날에는 시장을 강제로 철시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시민들을 강제로 민회 장소로 끌고 갔다고 하고, 실제 회의에서도 사려 깊은 논쟁이 오가기 보다는 서로 편을 갈라 온갖 야유를 토해내어 발언과 논박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들의 민회도 우리의 SNS라는 공론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컴퓨터·인터넷·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시민들 사이의 정보의 공유와 소통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그것은 그동안 감춰졌던 권력자들의 수많은 부정부패와 갑질이 외부로 드러내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공식화된 민주적인 정치기재로 사용하기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아니 어쩌면 자발적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사려 깊은 토론을 하는 시민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아테네의 민회에서건 현대의 SNS라는 공론장에서건, 처음부터 달성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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