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완종 사회·경제부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 둔 26일 이산가족인 오광수씨가 평화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빠른 시일 내에 개선돼 교류가 재개되면서 헤어졌던 친척들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고 있다. / 김용수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 둔 26일 이산가족인 오광수씨가 평화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빠른 시일 내에 개선돼 교류가 재개되면서 헤어졌던 친척들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고 있다. / 김용수

"아버지께서 그렇게 그리워하셨던 누이와 누이동생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청주에 살고있는 한 이산가족의 한숨섞인 한마디였다. 지난달 27일 남·북한 정상들이 11년만에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장면이 판문점에서 펼쳐졌다. 전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가운데 누구보다 이들의 만남을 학수고대 해온 남·북한 이산가족은 오히려 아쉬움의 목소리를 냈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지난 1972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처음으로 논의됐다. 당시 1년여간 남·북을 오가며 수 차례 회담이 열려 논의됐지만 이산가족의 첫 만남은 휴전 30년만인 1985년에 비로소 이뤄졌다. 남북 적십자사가 어렵게 성사시킨 첫 만남은 사흘간 남측 35명과 북측 30명만이 각각 평양과 서울을 방문해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이후에는 15년간 상봉이 이뤄지지 않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8월 15일부터 공식적인 '제 1차 이산가족 대면 상봉'이 이뤄졌다. 이는 2015년 10월 26일까지 대면 20차례 화상 7차례 등 총 27차례에 걸쳐 2만3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꿈에 그린 가족과 재회했다. 그러나 전국의 이산가족의 수에 비하면 현재까지 상봉한 이산가족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첫 교류인 1985년 이후 부터 현재까지 통일부에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1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 신청자중 5분의 1수준만이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한 것이다.

이완종 사회·경제부
이완종 사회·경제부

 

분단 이후 수십년이 지나며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산가족 1세대들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이산가족 1세대 생존자 수는 5만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 조차 연로한 몸은 이제는 가족들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힘들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 1세대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다.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의 '훈풍'이 남은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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