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자연재해시 대처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앙의 기회균등」이라 할만한 자연재해 발생은 굳이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지만 이에 따른 피해정도의 확산과 최소화 여부는 해당 국가의 대처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28일 미국 시애틀에서 발생한 지진은 이같은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었었다. 리히터 규모 6.8의 강진이 덮쳤던 시애틀에서 지진발생후 사흘만에 집계된 재산피해액은 36억달러였다. 하지만 잠정적인 인명피해는 부상 3백68명뿐. 지진 발생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66세 할머니는 지진관련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공식집계에서는 제외됐다.
 이는 아시아, 남미 등에서 빈발하는 지진사고를 접할 때마다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만명 까지 집계됐던 사망자수와 너무도 대비되는 수치였다. 물론 이를 두고 지표면에 대한 지진파전달 과정에서 지진에너지가 거의 소진돼버리는 「중발지진」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워싱턴주 정부가 내진설계를 하고 특수유리창을 하는등 수십년간 천재지변대비 프로그램을 시행해온 것이 피해 최소화의 원인이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않았었다.
 시애틀 지진의 경우는 「천재(天災)」라고 부르는 자연재해의 많은 경우가 철저한 사전대비와 과학적 대처가 결여된데서 비롯된 「인재(人災)」일수 있음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OECD 가입국인 한국은 그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인재가 많은 나라이고, 재해에 관한 한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등 떠올리기도 괴로운 여러 참사들은 안전의 가장 기초적인 규칙들을 외면한데서 초래한,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은」 전형적인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쓰라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대형 참사를 자초할 안전불감증이 만연해있다.
 노동부가 2000년도 건설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망재해자를 분석한 결과 대표적인 재래형 재해인 추락에 의한 사망이 전체 47.5%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낙하, 붕괴 재해를 포함한다면 반복형·재래형 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전체의 70.6%라는 것.
 이의 원인으로는 작업중 안전난간·낙하물 방지망 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시설 설치 미흡이 지적됐다. 공사현장의 안전불감증이야 항상 지적돼온 것이지만 최근에는 건설경기 위축으로 더욱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늘 크고작은 공사현장을 지나게 마련이다. 얼핏 눈으로 보아도 안전시설이 부실한 공사현장 밑을 지나는 마음은 불안하기만 한데, 그 현장에서 어이없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적지않다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엄청난 예산과 대단한 공정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안전난간과 낙하물 방지망을 갖추지 못해 인부들이 목숨을 잃는 후진국형 사고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정해진 기간내 계획된 공정을 마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사과정에서의 안전이다. 공사현장에서 재래형 재해를 불러오는 안전불감증은 완공 이후에도 균열이나 붕괴에 따른 엄청난 재산·인명피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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