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가뭄은 오늘이나 예나 다를바 없다.옛기록을 보면 강줄기가 끊길 정도의 가뭄 피해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가뭄을 극복하는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도 엿보인다.조선왕조 실록을 보자.숙종 47년 보은지역의 피해 사례가 나온다. 속리산의 하류이자 달천의 상류로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청천강 물이 5리 가량끊어졌다. 인조 20년에는 경기 관내에 가뭄이 심해 해충이 벼 싹을 다 갉아먹었다고 기술돼 있다.순조 12년 광주목사 송지렴은 상소문에서 『큰 흉년이 들어 만백성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중략) 전라도안의 황폐화된 논이 거의 10분의 7, 8은 된다』고 가뭄 피해를 적고 있다.왕과 조정은 먼저 명산대천을 찾아 기우제를 지낸다.그리고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돌리고 아픔을 백성과 함께 했다.태종 5년에는 물 허비를 금했고 중종은 금주령을 내렸다.태종ㆍ광해군ㆍ영조ㆍ정조는 음식 가짓수를 줄였다.정종때 성석린과 태종때 이문화는 왕에게 사직을 청하기도 했다.태종ㆍ세종ㆍ영조는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내어찌 약을 먹을수 있겠냐』며 탕약 마시기를 거절하기도 했다.지금의 정치인등 지도자들에게 경종이 울리는 대목이다.12일 대통령이 가뭄극복을 위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민ㆍ관ㆍ군 모두가 가뭄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런데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골프장, 게임에 열중하는 골퍼들의 모습은 농민들에 어떻게 보여질까.가뭄속 공직자 골프 내사속에서도 대망론을 자처하는 한 정치지도자가 또다시 골프장을 찾았다.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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