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홍수와 가뭄으로 대변되는 말은 「9년 홍수」와 「7년 대한」이다. 9년 홍수는 중국 우(禹)임금때 있은 일이요, 7년 대한은 탕(湯)임금때 있은 일이다.
 이 이야기대로 9년 홍수와 7년 대한이 있었다면 가히 인류가 멸망할 정도다. 이 대목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나는 각자의 해석에 맡겨 두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가 계속되면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고 또 우리의 노랫가락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전설같은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7년 대한 가뭄날에 빗발같이도 반긴 사랑』 이 민요에서 보듯 사랑을 비(雨)에 비유하고 있다.
 비와 사랑은 비록 유·무형의 다른 형상들이지만 반가움이라는 표현의 미학상에선 같은 궤적을 그린다.
 그래서 유독 비와 사랑의 관계를 밀도있게 설정한 대중가요가 많다.
 그 사랑스런 비가 목마른 대지를 흠뻑 적셔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껏 가져보지만 무심한 하늘은 묵묵부답이다. 몇달째 계속된 가뭄에 들녘도 타고 농심도 바짝 바짝 타들어 간다.
 속리산에서 발원하는 청천강(靑川江)은 비교적 수량이 넉넉하다. 그런데 숙종 35년(1739) 12월에 이변이 생겼다. 『청주 청천강의 물이 끊어졌다. 청천강은 곧 속리산의 하류이고 달천의 상류로 그 근원이 멀어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데 이 날은 5리 가량이나 물이 끊어졌다』(숙종실록)
 오늘날 극심한 봄 가뭄에 강심이 드러나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역사의 끊임없는 회전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나라에 기근이 들면 임금이하 신하들은 부덕을 자책하고 음주를 삼가했으며 인사(人事)도 자제했다.
 성종 22년 4월에 있은 일이다. 김경조(金敬祖) 등이 기상 이변과 인사를 관련시켜 상소를 올렸다. 연풍 등지에 우박이 내려 곡식을 손상시켰는데 이는 한 두사람의 인사기용서 초래된 것이라고 상소했다.
 신하들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 『홍양(弘羊)을 삶아 죽이지 않자 천한(天漢) 일대가 크게 가물었으며 홍패(弘覇)를 죽이지 않자 성도(成都)가 가물었고 이덕유(李德裕)가 정승에 임명되자 곧 비가 내렸으며 장상영(張商英)이 정승이 되자 큰 비가 내렸다』고 비유했다.
 인사이동과 천재지변은 기실 무관한 것이나 선인들의 의식속엔 삼투압처럼 천재의 여파조차도 생활속으로 끌어들인 우주관이 작용한 것이다.
 몇달째 봄가뭄이 계속되어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는데 도시에선 오히려 수돗물 사용량이 늘고 있다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밤만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유흥가는 여전히 불야성을이루고 있다. 재난시에는 모두가 힘을 모으고 또 본능적 욕구를 자제할 줄 아는 공동체의 미덕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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