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여야가 정쟁 중단을 선언하더니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들녘을 누비고 있다. 가뭄현장의 실상도 파악하고 농민들을 위로한다며 모내기도 하고 양수기도 전달하고 있는 것.
 고양이 오줌보다도 못한 비가 찔끔 내리는 시늉만 했던 지난 13일에도 여야는 국회 상임위 일정을 취소했고 충북지역에는 높으신 분들이 총출동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진천 문백을 방문한 것을 비롯, 지역출신인 김영환 산자부 장관, 정우택 해수부 장관이 각각 청원과 괴산 등을 찾았으며 홍재형·송광호·심규철 의원등은 자신의 지역구를 돌았던 것.
 굳이 이날만이 아니더라도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는 전국 들녘을 찾은 모모한 인사들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 있다. 아마 이번 가뭄이 사그라들고 어디선가 큰 물난리라도 난다면 우리는 또 수재민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그들의 모습을 원없이 보게 될것이다.
 참담한 재해 발생때마다 보아왔던 이런 행차들은 국가정책 반영을 위한 현장상황 파악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주민들과 국민들로부터는 마뜩찮다는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안그래도 쩍쩍 갈라지는 논밭 때문에 팍팍해진 농심을 위로하기는 커녕 번거롭게 하기 때문이다. 높으신 분들 행차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사람을 들볶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손을 놀려야 하는데도 그네들 일정에 맞추려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거기다 기껏 많은 사람 기다리게 해놓고는 번드르한 말 몇마디와 사진만 계속 찍거나 모내기 시늉 몇 차례 하고 사라지는 일정이 고작이다. 이들 때문에 일손 놓고 논밭으로 달려가는 공무원들의 행정공백까지 감안하면 정치적인 생색내기, 일회용 정치이벤트라는 퉁명스런 면박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원래 정치인들이란 기회포착에 능하고 사진 찍기를 유난히 밝히는 사람들임은 익히 알고있는 터다. 특히 언론을 활용한 홍보에 있어서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할수록 다선과 중진의원이 되고 권력의 핵심에 가깝게 가는 정치현실에서야 아주 탓할 일만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미운게 인지상정이다. 몇달 째 시원한 물줄기 내려주지 않는 하늘도 원망스럽지만, 무턱대고 하늘만 올려다보며 기우제나 지내게 만드는 답답한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물론 바지 걷고 모심으며 민심의 향배에도 귀기울이고, 고단한 삶을 체험하는 것도 나쁠것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대책없이 가뭄이 지속될 경우를 대비해서 어떻게 국가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대책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 그들이 할 일이 아닐까.
 정치인의 손은 직접 심는 모 한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민하고 대책을 수립하는데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마침 전국민의 가뭄극복 성금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 정성어린 성금이 정작 농민들 손에 쥐어지기까지 너무 많은 집행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불만이 높다. 그런 문제라도 먼저 고치는게 급선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