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도령과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이야기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이야기
  • 중부매일
  • 승인 2018.05.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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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충북100경] 49. 제천 박달재
제천 박달재에 세워진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동상.
제천 박달재에 세워진 박달도령과 금봉이의 동상.

얼마를 더 가야 하나. 이 길의 끝이 있기는 한가. 햇살은 눈부시지만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온 산하를 집어삼킬 태세다.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바람은 더욱 요동친다. 나무의 흐름을 보면 바람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산정 높이 올라갈수록 그 곤곤함은 나그네의 마음까지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이토록 험준한 고개를 어떻게 넘나들었을까. 그 고단함과 질긴 삶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경상도의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해는 지고 몸은 천근만근이었을 것이다. 산 속의 움막에 초롱불이 반짝였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늙은 부모와 금봉이라는 처녀가 박달도령을 반겼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박달도령은 밖으로 나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았다. 금봉이의 순박한 얼굴이 밤하늘에 더욱 빛났다. 박달도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리 사랑해도 될까요?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돌아오면 이곳에서 백년해로 합시다." 그날 밤, 박달도령과 금봉이는 서로의 사랑을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에 박달도령은 서둘러 서울길에 나섰다.

박달도령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금봉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밤낮없이 공부를 했고, 여러 번 시험을 봤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 때마다 금봉이가 궁금했다. 과거합격을 다짐했지만 그리움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고 싶어 달려갔다.

박달재에 도착해서 금봉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박달도령을 애타게 기다리다 3일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 충격과 절망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죽은 영혼이라도 만나겠다며 눈물로 여러 날을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넋을 잃고 고갯마루를 바라보니 꿈에도 그리던 금봉이가 맑은 미소를 머금고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달려갔지만 험준한 낭떠러지였다. 박달도령은 금봉이를 찾다가 발을 헛디뎌 목숨을 잃었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눈물을 훔쳐야 했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고, 고단한 삶에 눈물을 훔쳤다.

박달재는 노래로도, 영화로도, 악극으로도 유명하다. 나훈아, 남일, 김선아, 박재홍, 주현미, 백승태 등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신 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묵 허리춤에 달아주며/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사랑 앞에 서면 가슴이 오그라든다. 애달프고 그리움에 젖는다.

문희, 남진 주연의 '울고 넘는 박달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다. 박달재를 넘어 시집을 간 선녀는 고생스러운 시집살이 때문에 고달픈 나날을 보낸다. 시어머니는 시샘 많고 남편은 방탕했다. 어느 날 그녀는 실화범으로 쫓기는 남편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했는데 옥중에서 아이를 분만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한 나머지 감옥으로 찾아와서 아이를 데리고 가며 나중에 출옥하더라도 시댁에 발붙일 생각도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출옥한 후에 열심히 돈을 모아 쓰러져가는 시댁을 도와준다. 마침내 시어머니는 회개를 하게 되고 시댁의 알뜰한 살림꾼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박달재의 고개는 깊고 느리다. 계절의 흐름도 더디다. 북풍한설에 꽁꽁 얼었던 산하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새들의 소리부터 낭창낭창 들뜬다. 파릇파릇 새순이 솟아나는 봄날에는 약초와 산나물 냄새가 요동치고, 여름엔 수많은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숲의 그늘이 한유롭다. 길 가던 나그네는 이곳에서 잠시 몸과 마음 부려놓는다. 가을에는 오방색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아름다움 가득하더니 겨울에 오면 온 산하가 하얗게 몸서리친다.

박달재 정상에 서면 바람 소리에 놀라고 소쩍새 소리에 놀란다. 박달나무 숲에 머물던 바람이 숲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떠도는 혼령처럼 소쩍새까지 울면 서러움에 울컥한다. 삶이란 한없이 깊은 오지다. 빛과 그늘의 눈금에서 빛나는 일광이 눈부시다.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다. 글·사진 / 변광섭(컬처디자이너,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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