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김강중 국장겸 대전본부장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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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고 딱하다. 다름 아닌 대전교육청 행정이다. 대전교육청을 다시 출입하면서 느낀 소회다. 세상이 격절스럽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대착오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힘깨나 쓰는 기관도 이렇지는 않다. 문제를 지적하면 그저 호도하고 두둔하기에 바쁘다. 그야말로 '견지망월(見指忘月)'의 딴전이다. 돌아보니 8년 전에도 그랬다. 후배가 교육청을 드나들 때로 기억된다. 당시도 폐쇄, 권위적인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강산이 변할 세월이 흘렀으나 교육청은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일까. 제보가 넘쳐났다. 먼저 교장들의 갑질을 보도했다. 이어 부당하게 해촉당한 학교 지킴이 교사들의 억울함을 다뤘다. 그러자 마지못한 감사가 실시됐다. 감사결과는 피해자들은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교육청은 '해촉은 학교장 재량이니 의의제기도 교장에게 하라'는 무책임한 답변이다. 진상규명은커녕 요식감사로 진정인을 두 번 울렸다. 한 방송기자는 제보자 신상을 알려달라며 난데없이 끼어들었다. 그 학교 행사기사를 나불대며 교장 편에서 요설(妖說)을 떨어댔다.

기자 말년에 어이가 없었다. 어찌됐든 갑질을 당한 피해자의 절망 때문에 연속보도가 이어졌다. 그럴 즈음, 한 실업계 고교에서 교장의 여교사 성희롱 등 전횡이 접보됐다. 이 또한 교육청의 감사 회신은 어금지금했다. 답변인즉 '교장 임면권은 학교법인에 있으니 법인에 조사사항을 권고할 예정'이란다. 무엇하는 교육청인가 생각하니 분기(憤氣)마저 들었다. 예상대로 진상 규명보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팔이 부러져도 안으로 굽었다. 후속보도가 계속되자 특정세력과 결탁한 불온한 기자로 매도했다.

그러면서 실세 과장과 교육장을 통해 회유하는 양면을 드러냈다. 공보실은 지난해 여고생 추락사 보도에서 그랬듯 무마성 광고를 제의했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덮고 댐 막듯 막으면 된다는 식이다. 덮고 막으면 썩지 않는 게 없다. 이러고도 '행복한 학교, 희망의 대전교육'을 운운하니 실소할 일이다. '희망의 대전교육'을 위해 파다한 폐악과 고언을 전한다. 10여 년 전, 아빠를 여읜 여중생을 성폭행한 젊은 교사를 취재했다. 이를 은폐한 교장은 뒤늦게 그 교사를 퇴출시켰다, 보신을 위한 '선 은닉, 후 조치'였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오래 전 한 초등교사는 6학년 여학생을 성폭행 했다. 그는 중학교로 옮긴 뒤에도 여교사와 불륜을 계속했다. 무탈하게 교장으로 퇴직했고 정부는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이뿐일까. 돈과 여자, 아부에 출중한 고위직 간부도 가관이다. 그는 후배들을 시켜 행정실 여직원과 여교사를 술좌석으로 수시로 불러냈다. 청내에서 고명한 3인방 중 하나로 불린다. 말종이 승승장구 했으니 후배들이 전범(典範)으로 삼지 않을까 우려된다. 가증스런 건 여성 장학관이다. 그녀는 내연남의 가정을 파탄내고도 건재하다. 가정파괴범이 교장, 장학관을 하고 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사고뭉치들이 요직에 중용된 해악이다. 망사(亡事)가 거듭되면서 대전교육은 골병이 들대로 들었다.

김강중 국장 겸 대전본부장
김강중 국장 겸 대전본부장

언론이 양심을 버리면 사회는 병들게 마련이다. 교육 또한 양심을 외면하면 학교는 희망이 없다. 굳이 촛불이니 적폐 청산을 되뇌지 않아도 정역(正易)의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또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대한항공 세모녀 갑질이나 논란의 드루킹 또한 그렇다. 달포 전 둔산 술집에서 한 국회의원의 갑질이 그러했다. 이제 국민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시대는 지났다. 'SNS'로 국민 모두가 기자인 세상이다. 그만큼 세상은 투명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대전교육청은 이런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야 한다. 학생, 교사의 고충을 대변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고욕청(苦辱廳)'이라 부를 것이다. 사족을 단다면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소통과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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