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관희 일신여고 교장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 Daum 영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 Daum 영화

"애비는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가 뭔지 아는감?" " 글쎄요, 아버지!" " 그건 바로 인간농사라는 거여" "애비는, 인간 농사를 짓는 평생 농부임을 잊지 말고 궂으나 맑으나 애지중지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대해야 혀. 내 자식이 중(重)하면 남의 자식도 중한 법이여" 충주 모 고교로 첫 발령을 기다리는 나에게 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이시다.

공자는 인생의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설파하셨다. 공자의 말대로 하면 나의 교직생활은 이제 이립(而立)으로 자신만의 원칙과 규범이 완성된 상태라 하지만 애오라지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 아직까지 서툰 발걸음만 내 딛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 농부들의 발걸음 소리를 따라 농작물이 커가듯, 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꿈을 설계하고 발현하며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는 제자들도 있을 터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꿈을 꾸며 전전반측 불면의 밤을 뒤척이고 있을 예비교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더욱 겸손해진다.

우연한 기회에 젊은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과 '홀랜드 오퍼스'에서의 '홀랜드'처럼 꼭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 기억이 떠오른다. 문득 학생들의 재능과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키팅'과 '홀랜드' 선생님처럼 살아왔는지 나 자신을 성찰해보기도 하였다. 최근 교육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교권 침해나 교권 추락'의 사례가 10년 새 3배나 증가하였으며 실제로 소명(召命)의식을 갖고 임하는 교사들의 정체성을 흔들고 의기를 꺾음으로 인하여 교육현장을 떠나는 교사들도 점차 증가추세에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점점 자신의 권리만 존중받기를 바랄 뿐, 상대를 존중해 주기를 거부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공공의 질서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다른 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들 때문에 오히려 바른 길을 알려주고 부적절한 언행을 교정하기 위해 묵묵히 교육현장에서 그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다하시는 교사의 행동이 외려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사'라는 주홍글씨가 되어 화살로 꽂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5월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매년 반복되는 날이지만 이번 스승의 날만큼은 '스승의 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인식하는 그래서 교권이 바로 서고 존중받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회복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향기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관희 교장
한관희 교장

21세기는 상생의 시대이다. 인간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서로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그 아름다움의 시작은 바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시작되며 그 중심에 교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나는 애오라지 교사의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걸어왔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부귀영화(富貴榮華)의 삶은 아니었지만 내 옆에는 항시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은 30여년 내 교직 인생의 둘레에서 평생의 친구요, 연인이요, 동반자요,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어린 스승들이었음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

이제는 온갖 희로애락으로 물든 교단과 학생들 곁을 떠나야 한다. 일 년 후면 나는 쟁기를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농사짓던 땅에서 쟁기를 놓고 떠나야 하는 농부의 심정이 과연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쉽고 두렵기까지 하다.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떠났던 수많은 제자들과의 소중한 만남! 그 어디에 간들 만날 수 있을까? 인간농사는 나의 인생. 성현 선생의 '한 삼태기의 흙'이라는 수필의 글귀처럼 마지막 흙 한 삽을 멋지게 떠서 나만의 길을 만들고 그 길 끝에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교직이라는 산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나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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