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 / 뉴시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 / 뉴시스

필리핀은 한때 아시아의 부국이었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겪던 1960년대 중반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 시대에 필리핀은 500달러였다. 600~700달러 수준인 일본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당시 필리핀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부럽다. 우리도 필리핀의 반에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50년간 필리핀의 가장 큰 외화수입은 '가정부 송출'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제가 무너졌다. 왜 그랬을까. 1965년 집권한 마로코스 대통령등 지도층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명품구두 3천 켤레가 상징하듯 사치와 향락, 그리고 정권의 폭정과 악행, 과도한 빈부격차로 나라는 병들어 갔다. 국가지도자의 실정으로 과거 48년간의 식민지시대 미국이 남기고간 인프라와 풍부한 인구, 천연자원도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나라든 이럴 때 들고 일어나는 것이 혈기 넘치는 학생들이다. 이들의 구호가 '룩이스트'(Look East·동방을 보라)였다. 미국이나 서유럽이 아닌 한국이나 일본을 본받자는 의미이다.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학생들이 거리에서 "한국을 본받자"고 외쳤다. 필리핀에서는 단순한 구호에 그쳤지만 말레이지아로 옮겨가면서 국가 경제의 틀을 바꾸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 이번에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93세) 나이에 15년 만에 다시 총리로 선출된 마하티르다. 그는 1981년 집권한 이후 '룩이스트'정책으로 말레이지아를 신흥국 경제우등생으로 성장시켰다. 마하티르는 제4차 말레이시아발전계획을 착수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근면성 ·근로자세 ·노동규율 등을 배우자고 제창해 초고속 성장을 이끈 지도자가 됐다. 그 후 터키 ·싱가포르 등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전개됐다.

개발도상국만 룩이스트를 외친 것은 아니다. 2년 전 브렉시트이후 영국 주요 언론에서 포스트 브렉시트 모델로 거론되는 나라가 스위스와 캐나다였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도 꼽혔다. 당시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천 스퍼리어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번영할 수 있다는 증거를 원하느냐? 그럼 한국을 봐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와 9·11 테러로 대미(對美) 수출이 급감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직면했지만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아직도 한국경제는 롤 모델이 될만한가. 남북해빙무드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견고하지만 경제는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펀더멘탈(경제기초)은 여전하다고 하지만 성장력은 둔화됐다. 성장 동력인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생산과 투자가 큰 폭으로 줄고 공장가동률은 1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서비스·자영업까지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만성적인 취업난에 청년실업률은 사상최고치다. 구인난 시대에 대학졸업 예정자 10명중 네 명이 이미 취업했다는 일본과 딴판이다. 말레이지아 국민들이 초고령 정치인을 다시 총리에 컴백시킨 것은 민생고(民生苦)와 부패에 대한 염증, 고속성장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한때 '룩 이스트'를 추구했던 마하티르 총리의 시선은 이제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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