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극동대 간호학과 나이팅게일 선서식(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극동대 간호학과 나이팅게일 선서식(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사람의 만남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한다. 생선 같은 만남, 꽃과 같은 만남, 손수건 같은 만남. 생선 같은 만남은 만나면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오고, 시기와 질투로 싸우고 원한을 남기는 만남이다. 꽃과 같은 만남은 꽃이 10일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갈수록 퇴색하고 나중에는 지저분하게 이어지는 만남이다. 마지막으로 손수건과 같은 만남은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기쁠 때 축하해주고, 힘들 때 땀을 닦아주며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하는 만남이다. 정채봉 작가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k부장을 만난 건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었다. 입사한 직장에 인사를 드리고 보니 같은 항렬로 가까운 촌수였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따스한 시선과 친근한 말투가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새내기였던 나는 혈연이라는 명목 하에 서투른 업무도, 가끔씩 하는 지각도 용서가 되었다. 그녀로 하여금 처음 접해보는 금융업무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핌은 깜냥도 안 되는 막내사원인 나에게 단단한 갑옷을 입혀 주었다. 그러던 어는 날 큰 실수를 저질렀다. 매일 은행 영업시간이 종료된 후 입출금 된 모든 자금을 확인 하는 과정에서 1만원을 출금해야 되는 고객에게 10만원이 지급 된 것을 알았다. 착오가 난 금액을 고스란히 내가 채워내야 할 지경에 이렀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채워 넣어야 했으니 참으로 암담하였다. 실의에 빠져 있는 나를 데리고 그녀는 착오가 난 고객을 찾아갔다. 그러나 당사자는 집에 없었다. 무작정 그 집 앞에서 3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끝에 착오가 났던 돈을 돼 찾아올 수 있었다. 아마 나 혼자 찾아 갔더라면 고객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으니 그녀 덕에 나의 커다란 실수는 잘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이후로도 가벼운 실수에서 큰 실책까지 책임을 추궁하기 보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때로는 자상한 선임으로, 때로는 엄격한 상사로써 훈련시켜 일 잘하는 여사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결혼을 하여 서로의 삶이 달라졌어도 손수건과 같은 만남은 변함이 없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간호학을 전공하고 종합병원에 근무하게 된 조카가 한동안 냉혹한 조직 문화에 많이 힘들어 하는 걸 보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과중한 업무에 엄격한 위계질서와 선임들의 꾸중과 질책은 조카의 자존감을 몹시 떨어뜨린 것 같아 보였다. 환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여기다 보니 초보 간호사에게 동정심이나 연민이나 배려심이 부족 할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정당화되었다. 다행히 조카는 힘들었던 초보과정을 잘 참아내고 지금은 전문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후임을 맞이할 때마다 자신은 절대 그러한 과정을 되물림 하지 않길 다짐하며 지도하고 있단다. 요즈음 이러한 폐습을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들 스스로 '태움 금지' '상호존중' '인격모독금지' 라는 배지를 제작해 패용하며 조직문화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세상에 좋지 않은 만남이란 없다. 어떤 형태의 만남이든 그 속에서 성장하며 발전한다. 며칠 전 남과 북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과 북의 정상이 역사적 합의문에 서명하는 순간 7천만 겨레의 가슴은 감격 그 자체였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으로 조선의 건국 신화가 시작되었듯이 70여년의 긴 기다림 끝에 짧은 만남이었지만 새로운 신화가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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