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선도농협을 찾아서] 2.청남농협
부실농협 1년만에 정상화시킨 저력 조합원 덕분
직원출신 충북 유일 여성조합장 위기 극복 신화
충북 최초로 독립 로컬푸드 매장 준공해 차별화

청남농협 안정숙 조합장(맨 오른쪽)과 신현성 상임이사(가운데), 임직원들이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에 위치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조합원들이 출하한 농축산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청남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는 150여 명의 조합원이 300여 품목의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을 출하하고 있다. / 신동빈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충북 유일의 여성 조합장, 부실조합을 1년여 만에 건실농협으로 돌려세운 주인공, 현장 농업인 아카데미를 개설해 조합 체질 개선에 나선 파란의 주역. 청남농협 안정숙 조합장을 소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설명들이다. 충북농협이 인정하고 무엇보다 조합원이 신뢰하는 농협, 충북 선도농협 두 번째 탐방지는 청남농협이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당당히 깨고 섬세함과 적극적 소통, 끊임없는 학습으로 시골 농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안정숙 조합장을 지난 10일 청남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서 만났다. / 편집자

◆위기와 함께 찾아온 기회
안정숙 조합장은 2015년 3월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충북지역 66개 지역농협 가운데 유일한 여성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타 지역 출신이면서 청남농협에서 근무했던 직원 출신. 안 조합장의 당선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조합 내부의 관심은 더 뜨거웠다. 여성이라서, 직원 출신이라서가 아니었다. 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 출자배당도 못하는 상황, 직원들에 대한 보상체계도 인근농협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53억 원이라는 거액의 대출부실로 발생했던 20여억 원의 손실을 새 조합장이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의 눈초리가 특히 매서웠다. 당선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들불 번지듯 확산되고 있는 부도설, 출자금 회수 여론부터 잠재워야 했다.

충북 유일의 여성조합장으로 선출되며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안정숙 조합장이 로컬푸드 직매장 옆 행복모음카페에서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 신동빈 

"취임하자마자 남일면, 가덕면, 문의면 3개면에 걸쳐 있는 100여 곳의 자연마을을 찾아다니며 조합원 좌담회를 열었어요. 투명 경영을 통해 농협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설득했죠."

안정숙 조합장의 현장 소통에 조합원들은 격려 대신 비난을 쏟아냈다. 성토장이 따로 없었다. 취임 전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 추궁이 억울할 법도 한데 조합장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신현성 청남농협 상임이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울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서 웃고 있는 조합장이 대체 속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어요. '아니 이 상황에서 지금 웃음이 나와요?'라고 되물은 적도 있었죠."

웃음의 영향력은 예상보다 컸다. 상처받은 조합원에겐 위로가 됐고,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확신을 줬으며, 대출문제로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에게는 '같이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남일·가덕·문의면 인구 1만2천명 가운데 청남농협 조합원수는 3천명. 농가인구 5천600여명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1969년 3개 면의 단위농협이 1998년 2월 청남농협으로 신설합병 출범하면서 청남농협의 덩치도 커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영은 침체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에 위치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조합원은 물건을 진열하고 소비자는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 신동빈 

농촌 고령화로 전체 조합원 중 70세 이상 고령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7%까지 늘어났다. 농업 생산기반 약화, 사업 위축이 불가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대출부실 사건은 충격이 컸다.

20여억 원의 손실로 적자결산(-7억원)을 하자 조합원은 동요했고 고객은 이탈했다. 2015년 주요경영분석결과는 최하위였다. 경영상태 '부진'. 안정숙 조합장이 가장 먼저 한 선택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경영에는 자존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게 현명하죠."

100여개 마을의 조합원들 만나는 동시에 중앙본부의 도움을 받아 경영컨설팅을 실시했다. 문제점을 파악했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비난 자체보다 비난 내용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했어요. 놀라운 일은 단 한 명도 출자금을 회수한 조합원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믿어주신 거죠. 고마웠어요."

신현성 상임이사가 주저함 없이 안정숙 조합장의 저력을 '웃는 얼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웃음이 자신감이면서 겸손이고 또한 치유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합원이나 직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어요.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더라고요.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어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비난이 격려로, 불신이 신뢰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 조합장은 취임 1년여 만에 부실농협을 건실농협으로 돌려세우며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나이 든 어르신 조합원들을 특별히 살뜰하게 모시는 안정숙 조합장. 신현성 상임이사는 안 조합장의 무기가 '웃는 얼굴'이라고 했다. / 신동빈 

◆공부하는 농협, 실천하는 농협
상임이사 외부 영입은 안정숙 조합장 선출 사건만큼이나 개방적인 선택이었다. 변화를 원했던 조합원들은 전문성을 가진 상임이사 영입에 힘을 실어줬고, 경영은 안정됐다.

조합장과 상임이사는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연체관리를 강화했고 지난 4월 기준 연체비율 0.1%대를 유지하며 2016년부터 2년 연속 클린뱅크 인증을 획득했다. 3등급이었던 경영평가는 1등급으로 올려놓았다.

기업대출 지원을 발굴해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경제사업 중 조합원이 참여하는 공동출하사업(딸기)과 관외지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사업 다변화를 꾀했다.

그 결과 청남농협은 건실농협, 공부하는 농협, 실천하는 농협으로 거듭났다. 전 직원의 직무능력 향상 교육은 물론이고 현장 농업인을 위한 농업인 아카데미도 호응을 얻고 있다.

"농민 조합원 스스로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 농업인으로 거듭나야 소득도 증대하고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에 위치한 로컬푸드 직매장은 기존의 농산물집하장을 활용해 만들었다. 150여 명의 조합원이 300여가지 품목을 출하하고 있다. / 신동빈

지난해 6월에는 기존 농산물집하장을 리모델링해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준공했다. 조합원 150여명이 300여 품목의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을 출하하고 있다.

한우농가 소득증대를 위해 정육점과 한우자율식당을 별도 마련했고, 농가주부모임에서 운영하는 행복모음카페를 만들어 다문화가정도 지원하고 있다.

직원과 조합원의 한마음 대회, 지속적인 경영 개선, 조합원 교육, 자녀학비 보조와 소농기구 공급 등 청남농협의 확장성은 섬세하면서도 폭넓은 것이 특징이다.

위기의 순간 자존심을 내려놓고 중앙본부의 전문인력 지원을 요청해 경영컨설팅부터 실시했던 조합장. 재무 분석, 리스크 관리, 금리운용, 경영 안전성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부터 찾았던 조합장.

안정숙 조합장은 청남농협의 위기 극복 키워드로 화합과 개방, 자발적 변화, 정확한 진단, 자존감과 자신감 회복, 신념과 책임감, 재미, 투명경영을 꼽았다.

안 조합장은 "청남농협의 위기 극복과 변화, 발전은 조합원들의 의지와 선택, 실천이 있어 가능했다"며 "앞으로 농민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 농민과 소비자가 모두 웃을 수 있는 로컬푸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정숙 조합장(가운데)과 신현성 상임이사(가운데에서 오른쪽 첫번째), 청남농협 직원들이 조합원들이 출하한 농축산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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