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고,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절망의 늪에서도 창밖의 별 바라보며 꿈 키워
장편소설 '나무의 숲' 발간...절망 속 사는 사람들에게 용기 주고파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불행한 인생이 꼭 나쁜일만은 아니라는 것, 또 아무리 인생이 나빠보여도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고 살아야할 분명할 이유가 있다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감내할 수 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 자세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고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로서는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 건강했던 한 청년은 195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건장한 키에 준수한 외모, 1983년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ROTC 21기 육군 포병장교로 임관해 중위로 전역했다. 그의 나이 30이 되던 1989년 그는 서울에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었고 미래를 약속한 약혼녀도 있었다. 그는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이 계신 춘천으로 가 인사를 드리고 상경하다가 교통사고가 나고 만 것이다.

여동생 내외가 앞에 타고 예비 부부가 뒷자석에 타고 있었는데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튕겨나가버린 차는 바위 위로 떨어졌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 타박상 정도만 입었지만 그는 경추 4번과 5번 신경이 절단됐다. 어깨 아래로 감각을 잃어 졸지에 지체 1급의 영구사지마비장애 판정을 받았다. 결혼도 깨지고 그의 인생도 이렇게 깨져버리는 듯 했다. "왜 하필 나에게만." 원망과 시련의 시간도 보냈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려 하는 한 남자. 

황원교 작가
장편소설 '나무의 몸'을 쓴 황원교 작가는 지체1급 영구사지마비장애를 지니고 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황 작가는 안경에 달린 센서와 헤드마우스를 이용해 글을 쓴다. "인생이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고,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감내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는 황 작가는 오늘도 희망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 / 김용수 

3권의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자 산문집과 최근 장편소설 '나무의 몸'을 낸 황원교(60) 작가 이야기다. 

그는 교통사고 후 7년간 폐인으로 살았다. 2남 2녀의 장남이었던 그에게 닥친 시련을 그의 부모님도 고스란히 함께 해야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그는 곡기를 끊고 자살 기도도 했었다. 하지만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그에겐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황 작가는 어머니의 수발을 7년동안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막내 남동생이 코피를 수돗물처럼 쏟더니 '중증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남동생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충격으로 그 다음날 돌연사 했다. 그동안 누적된 과로도 한 원인이었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제가 사고로 다쳤을 때보다 더 심한 충격, 그 이상이었어요. 패닉 상태가 온거에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삶의 자세가 바뀌더군요. 자살 기도도 했었지만 계속 이렇게 살면 하늘에서도 어머니가 눈을 감지 못하실까봐."

절망의 순간이지만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절박감과 위기 의식이 그를 더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됐다. 
 

황원교 작가가 지난 고난의 세월을 힘겹게 이겨나간 재활 훈련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 김용수

"어머니 마저 떠나시고 홀로 계신 아버님께서 저와 아픈 동생, 이 두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몸과 마음의 고생을 하고 계신 아버님께 나마저 이러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한거죠."

이런 어려움을 독서로 달랬다는 황 작가. 그에게 마음을 다잡게 한 2권의 책이 있다. 텔마 톰슨의 '빛나는 성벽'과 쟝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

그의 마음을 깨운 '빛나는 성벽' 한 구절은 '감옥에 사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창밖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보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는 것.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 어떠한 상황과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황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또 '잠수종과 나비'의 주인공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황 작가 또한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나의 글로써 나보다 더 힘들고 절망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운명처럼 그 자리에 들어선 사람은 바로 황 작가의 아내 유승선씨였다. 성당에 다니던 유씨는 황 작가의 어머니가 다니던 성당의 자원봉사자였고 어머니가 안계신 황 작가의 집을 찾아 봉사하며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니기를 7년. 수녀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황 작가가 마음에 쓰여 결국 옆에 남기로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 둘은 결혼에 성공했다. 

황원교 작가의 안경 가운데 있는 센서로 컴퓨터 자판을 움직일 수 있다.
황원교 작가의 안경 가운데 있는 센서로 컴퓨터 자판을 움직일 수 있다.

황 작가는 축생(畜生)같은 비루한 삶이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그는 입에 마우스 스틱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하나씩 눌러 작품을 완성했다. 그 결과물이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고 2000년에는 계간 문학마을 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첫 시집 '빈집 지키기'를 출간했다.

2008년과 2012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장애인예술가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돼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와 시집 '오래된 신발'을 출간했으며 2013년에는 제3회 '청선창작지원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편소설부문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됐으며 현재는 창작과 강연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마우스 스틱으로 글을 쓰던 황 작가는 5년전부터 안경에 달린 센서를 이용한 헤드 마우스 장비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완전 신선 놀음이죠. 하하." 또한 책을 읽으려면 꼭 옆에서 도와줘야했는데 3년전 부터는 황 작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보조기를 활용해 많은 시간을 독서로 보내고 있다.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지난 4월 '나무의 몸'이라는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놨다. 자전적 장편소설로 현실에서 할 수 없지만 소망했던 것, 한 젊은 중증장애인이 겪는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 표출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인생이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고, 살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도 감내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 김용수

"현실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강렬한 의지를 줬던 것 같아요. 이번 소설에서도 담고 있지만 불행한 인생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것, 어렵고, 힘들고, 하루하루가 절망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제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해서 작업을 이뤄나갈 계획입니다."

황 작가는 올 하반기에 4번째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소설 부문에 매력을 느낀다는 그는 그의 이야기가 아닌 순수한 픽션으로 이야기를 엮어 단편소설 모음집도 준비할 예정이다.

파란과 질곡의 삶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희생과 헌신, 친구와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라는 황 작가. 그의 용기가 이 땅에 모든 중증장애인 뿐 아니라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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