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관련 그래픽 /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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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눈물이 핑 돌만큼 가슴 아픈 이름이다. 물론 필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아이지만 필자는 지금도 난방이 들어오는 따뜻한 욕실바닥에 발을 내려놓을 때마다 추운 욕실에서 힘들어했던 원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괴롭다. 여러 유관단체에 가정폭력과 관련한 법률 강의를 하러 다니면서 '주변 아이가 학대당하는 것처럼 의심되면 신고하세요'라고 강의하지만, 여전히 '남의 일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이 큰 장벽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원영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여전히 사진 속 아이처럼 밝게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국인들이 미국여행 중 아이를 잠시 차에 두었다가 '학대'로 처벌받았다는 뉴스, 또는 어린 자녀를 혼자 잠깐 심부름을 보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뉴스는 모두 주변 사람들의 신고에서 비롯되었다. 때로는 뭐 그만한 일로 신고를 해서 부모를 처벌하는가하는 반대의 의견도 있지만, 이처럼 철저한 신고들이 있어서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문제가 사전에 예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어떤 아이가 계부로부터 오랜 시간 폭행을 당한 아이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스스로 신고를 했는데, 아이의 친모가 '계부의 소득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다'며 자녀를 대신해서 계부와 형사합의를 진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곤궁함을 느껴보지 못한 필자가 그 친모를 마냥 비난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아이가 '계부의 소득' 때문에 계속 맞고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죄스럽지 않나 싶었다.

필자 역시 이웃집에서 아이를 야단치는 소리를 들으면 고민을 한다. 부모의 정당한 훈육인가, 아니면 학대인가. 또 괜히 남의 집 일에 끼어들어 원망듣는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닌지. 내가 나선다고 뭐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텐데 등. 계속 고민한다. '수 없이 많은 난민 중 한 두 명 구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한 목사님이 '그 한 두 명에는 일생입니다'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고민이 들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한 아이에게는 일생이고, 그 아이가 성장해서 또 다른 아이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남의 일에 끼어드는 오지랖'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 중부매일 DB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 중부매일 DB

물론 법이 신고자를 보호해야한다. 사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신고자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지는 다소간 의문이다. 수사기관이 신고자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보호한다는 신뢰가 형성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신고를 하고, 그렇게 신고가 보편화되다보면 원영이처럼 추운 화장실에서 혼자 죽어가는 아이가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음식이 남아돌아 버려지는 우리나라에서 배가 고파 고통받는 아이가 없기를, 누군가로부터 맞아 고통받는 아이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그러기 위해서 남의 집 일에 참견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이를 위해서 법조인으로서 앞으로 신고자들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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