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범죄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만 박사는 사람은 8분마다 한 번씩, 하루에 최소 200번 정도는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다고 한다.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생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정치인들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모습을 보노라면 분노와 함께 허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사회가 거짓말로 물들어 가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짓으로 병들어 가는 사회를 고쳐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간 때는 1902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에 결혼식을 올렸던 아내 이혜련과 함께였다. 그가 미국에 간 이유는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배워 조국을 교육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교육입국(敎育立國)에의 일념 때문이었다. 그가 미국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이 고교에 입학하는 일이었다. 25세 나이에 고교에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미국교육을 제대로 알려면 기초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미국 교육법이 고등학교는 18세까지만 입학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백인들이 동양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테니 그냥 18세라고 하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요령 있는 처신이 아니겠느냐"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안창호는 완강히 거절하며 "우리 조국이 망하게 된 것이 거짓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지도자들과 거짓을 가까이 하는 백성들 탓에 나라가 망하게까지 되었는데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노라고 미국까지 온 내가 거짓말을 해서 학교를 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될지라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노라"고 하였다.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다행히 안창호의 마음가짐을 들은 어느 여교장이 "18세까지의 법은 미국인들을 위한 법이지만 당신은 조선인이니 이 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융통성 있는 법 해석으로 그를 학생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죽더라도 거짓을 말자", "꿈에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안창호의 다짐이었다. 영국에서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사람이 출전했다. 어떤 연사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큰 바위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나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연사가 무대에 올라갔다.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듣고 있던 심사위원들은 감탄했다. 그리고 그를 1등으로 결정했다. 거짓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정직이 어색한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거짓말은 마치 눈덩이와 같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게 되면 그것은 점점 커져서 걷잡을 수가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시작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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