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아르헨티나는 은(銀)을 뜻하는 라틴어 아르헨튬(Argentum)에서 유래됐다. 국토의 중앙을 흐르는 강 '라 쁠라따'도 스페인어로 은, 또는 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은'이 이 나라를 먹여 살리지 못했다. 대신 '팜파스'라고 하는 드넓은 초원을 활용한 축산업과 곡물을 유럽으로 수출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발판으로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 초 이미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 교역량 10위의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1946년 집권한 후안 페론이 자유시장 경제였던 국가시스템을 사회주의로 돌려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외국자본을 추방했다. 노조와 빈민층을 지지층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매년 임금을 25%씩 올렸고, 복지지출도 대폭 늘렸다.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 '에비타'다. 열다섯에 집을 떠나 서른셋에 모든 것을 이루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에바 페론(에비타)가 주인공이다. 에바는 사생아 출신의 나이트클럽 댄서였지만 남다른 야망으로 영화배우에 데뷔할 무렵인 1944년, 지진으로 인한 난민구제모금 기관에서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뀐다. 민중혁명으로 페론이 대통령에 추대되면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어린 시절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에바는 권좌에 오르자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기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사회적 불평등 척결에 나선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1978년 그녀의 삶을 드라마틱한 가사에 담았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그녀의 조국을 전 세계 팬들에게 각인시켰지만 그녀의 남편 후안 페론은 대중 정치인들의 뇌리에 박혔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포퓰리즘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공짜의 단맛에 길들여져 걸핏하면 거리로 나가서 복지 보조금을 정부에 요구하고 정치인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국민의 떼 법에 굴복해 정치적인 생명을 연명해 갔다. 이 때문에 그는 포퓰리즘의 상징이자 아르헨티나를 후진국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됐다. 아르헨티나는 1982년 외환위기,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다. 최근엔 국가부채와 외채가 급속히 늘어나 경제가 몰락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다시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배경에 페론주의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포퓰리즘은 선심성 정책이다. 특히 선거를 치를 때 유권자들에게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퍼주기 정책을 남발하는 일이 전형적이다. 정치·사회 개혁보다는 권력유지 또는 권력창출 수단으로 악용된다. 국민의 쌈짓돈으로 땜질에 나선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떠오른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들어가면서 부의 균등분배를 추구했던 페론과 에바는 어찌 보면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나라의 곳간이 화수분처럼 차고 넘치지 않는 한 국민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에비타에서 호텔 발코니에 서서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환호소리에 취한 에바가 "들려요? 저 환호소리!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흥분하자 옆에 있던 체게바라가 대답한다. "정치란 환호로 끝나는 게 아니라네". 맞다. 환호가 끝나면 언제 감당하기 힘든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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