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세종시 교육부 전경. / 뉴시스
세종시 교육부 전경. / 뉴시스

최근 교육부는 지난 2011년 이래 써왔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다는 중, 고교 역사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 시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냐?" "우리 헌법 전문과 제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에 자유민주주의가 명시된 있음에도 자유를 뺀다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반면 '자유'를 빼도 무방하다는 주장의 논리는 이렇다. "자유민주주의는 크게 보면 민주주의의 한 내용이다. '자유' 없이 '민주주의'만 표현했다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인정한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입장이다.

여하튼 '삭제냐, 유지냐?'를 둘러싼 논쟁을 요약하면 이렇다. 보수진영은 '자유'를 빼면 '좌편향'이 된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교육부 측은 '자유'란 '시장의 자유'를 뜻하는 측면이 강해 빼도 전혀 기존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Liberal Democracy'다. 'liberal'를 제외한 'Democracy'는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다.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이 합친 말이다. '국민의 지배'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가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수사학적 표현으로 보자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Democracy'가 어떻게 '민주주의'로 번역되었는가? 배병삼 교수(영산대)가 발표한 '동아시아의 서양어 번역 사례'를 살펴보자<교수신문 2010년 3월 22일>.'Democracy'는 동양 삼국 중 청나라로 먼저 유입됐다. 1839년 아편전쟁 때다. 영국과 난징조약 체결 후 지식인들은 'Democarcy'란 용어를 처음 접했다. 번역을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소리에 근거해 번역하는 습관이 적용됐다. '더모커라시(德謨克拉西)'가 당분간 사용되었다. 당시 청나라에는 군주를 칭하는 '인민의 주인'이란 용어가 있었다. 이 '인민의 주인' 이 어느 학자에 의해 '인민이 주인"으로 둔갑되었다. 이를 줄여 '민주(民主)'라 했다. 1890년대에 '민주'란 말이 보편화되면서 'Democracy'는 '민주주의'로 번역돼 지금에 이른다.

일본에서는 '민본주의(民本主義)'로 번역됐다. 요시노 사쿠조오가 1914년 <중앙공론>에 발표한 몇몇의 논문에서 'Democracy'를 '국가의 주권이 인민에게 있는 체제인 민주주의'와 '주권은 군주에게 있지만 인민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체제인 민본주의'로 구분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보다 '민본주의'에 무게를 두었다. 조선에는 1920년 <개벽(開闢> 창간호에 실린 '데모크라시 약의(略義)'란 박래홍 논문에 처음 등장했다. 민주와 민본을 함께 사용했지만 민주주의를 보다 자세하게 규정했다. 인민에 의해 행하는 정치를 '민주주의'라 표현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삼국의 'Democarcy'의 번역어를 비교하면 각 국의 정치적 염원에서 비롯됐음을 엿볼 수 있다. 군주제 철폐를 갈구하는 청나라 지식인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민주주의'로, 천황제를 유지하려는 일본 지식인들의 염원이 '민본주의'로 번역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동양의 학문 전통인 민본주의를 우선시하면서도 청나라처럼 군주제를 탈피하고자 했던 염원이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것이라 추측된다.

여하튼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형태'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붙이거나 뺀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본질이 강조되거나 퇴색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자유를 뺀다.'는 측이나 '자유를 내버려둬야 한다.'는 측 모두 본질적 의도가 의심스럽다. 극단의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하고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상황에서 한쪽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옹졸한 정치행태가 아닐까? 언어는 개인의 지식 등을 전달하거나 대화를 위한 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다. 사회적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야 그 가치가 있다. 언어는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통행이라는 얘기다. 특히 권력자가 일방적 동의를 강요하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권력자는 간혹 '사슴을 말로 바꾸는(指鹿爲馬)' 권세를 휘두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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