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서늘한 눈매, 갸냘픈 목선, 화려한 색채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한국 원로화가 천경자화백(78)의 작품은 마치 환상의 세계에서나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게 미술평론가들의 말이다. 『아무리 행복해도 누구에게나 고독이라는 존재는 살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고독을 가만히 응시해 보세요. 어느 순간엔가 아주 찬란한 광채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고독속에서 피어나는 꿈과 정, 그리고 어떤 한 같은 것들이 바로 제가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천화백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은 화폭에 등장하는 여인의 자태만큼이나 아련한 순정의 슬픔이 배어 있다. 감성적이며 서술적인 화가로 동양화의 한정된 틀을 깨고 현대 동양화의 신기원을 마련한 천화백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적 환상의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한국 여성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특히 일관되게 여성적 모티프를 주제화하고 색상과 표현에서 독자적인 여성양식을 창안함으로써 본격적 차원에서 여성적 동양화의 한가지 전형을 제시했다. 오는 4월께 서울 옛 대법원 건물로 이전할 예정으로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천화백의 작품실을 별도로 개설할 예정이다. 개인작가의 이름으로 작품실을 개설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곳에는 1940년대에서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이 전시돼 한눈에 천화백의 작품세계 전반을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적 판타지를 표출해 여성의 본질을 미술로 형상화한 최초의 본질주의적 여성화가로 한국 회화사에 기록된 천화백의 작품실 개관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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