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끓었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우리네 기질을 놓고 「냄비근성」이라는 달갑지 않은 표현을 한다. 최근 전국을 강타한 「채소열풍」 또한 온갖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흥분과 균형감각 상실을 대표하는 사례라 할만하다. 얼마전 모 방송의 특집 프로그램이 건강 유지를 위한 채소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래 날이 갈수록 그 여파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매장의 채소 코너가 폭격 맞은 것처럼 싹쓸이되고, 채소 전문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각종 책들과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부작용들이다. 채식이 좋다는 주장이 곧 육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역의 주장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육류 판매 및 소비가 급감, 축산농가에 실제적 타격을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축산농가들의 항의와 파문 확산을 우려한 방송사에서는 설 연휴 예정됐던 재방송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번 채소열풍은 어떤 게 좋다더라는 한 마디에 우르르 몰려가곤 했던 우리 사회의 이상 흥분증상을 다소 코믹하게 보여준다. 채소가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다. 시금치 먹고 올리브를 구해주는 뽀빠이 아저씨는 인체에 유익한 채소 섭취를 효과적으로 권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됐었다. 다양한 채소에서 섭취가능한 요소들이 암 등 치명적인 질환을 예방하거나 혹은 치료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난리인지 모르겠다. 채소가 건강에 좋다는 것 만큼이나 육류 섭취시 여러 질환의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과도한 육류 섭취가 고혈압과 비만 등 현대병을 유발하는 만큼 적절한 채소 섭취로 위험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걸 설마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도 그 사실을 마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과도한 흥분에 빠져있는 것이다.
 채소와 육류의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맞서있는게 현실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만으로도 인체 활동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다 흡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입장에서는 채소에서 섭취할 수 없는 영양소를 육류에서 제공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전문가도 채식만 좋고 육류소비는 그릇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사태는 식생활 변화에 따른 육류 소비의 증대가 갖고 오는 위험성들을 경고하면서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이 왜곡돼있는 데서 비롯됐다. 「과유불급」의 지혜는 「골고루」의 균형감각을 식생활에서도 요구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 이치를 나몰라라 하는 흥분을 자제하고 어서 균형감각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채식주의를 선택하든 육식을 선호하든 선택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또 강경한 채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육류소비의 정치경제학적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느닷없이 하루 아침에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가뜩이나 어려운 축산농가들에 실제적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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