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스크린쿼터 폐지론이 들먹이고 있다. 지난 98년 이래 몇 차례 폐지론이 제기됐지만 그 때마다 전국민적 비판을 받아 잠복해야 했으며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천명하는 두 차례 국회 결의안까지 통과된 사안인데도 이달 부시 미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몇 년간 끌어온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 스크린쿼터 폐지 혹은 축소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통상부처이다. 이들은 일부 스크린쿼터 폐지론자들과 함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40% 달성이라는 상황변화를 들며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6.1%에 달한 만큼 더이상 스크린쿼터를 유지시킬 명분도 필요성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치 스크린쿼터 유지의 최후보루인 것처럼 인식돼온 「40%」라는 수치는 사실 김대중대통령이 97년 대선 당시 공약사항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수치가 설사 스크린쿼터제의 문화적·경제적 의미를 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징적으로 제시된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이 또한 장기간에 걸친 평균지표로서 산출되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은 지난 해 「친구」를 비롯한 특정 영화의 이상흥행으로 견인돼온 점유율 40% 달성에 자족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한국영화가 산업으로서의 시스템을 갖추고 본격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이 고작 2, 3년 전부터임을 상기할 때 성급한 낙관이 불허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전례 없는 중흥기를 맞고 있으며 상승기류를 타고 있음은 자명하지만 제작과 배급, 상영의 전 과정이 고도로 구조화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언제라도 한국영화 점유율이 4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쿼터제를 부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40%」를 스크린쿼터 폐지론의 근거로 드는 것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상황논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논의는 「40%」가 아니라 스크린쿼터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20세기 개막과 함께 시작된 1백여년의 영화역사는 어찌 보면 헐리우드 영화산업에 의한 전세계 영화산업의 저항과 몰락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같은 점에서 거대한 자본과 기술, 정치권력의 집적체인 헐리우드 영화에 고스란히 노출됨으로써 영화산업이 붕괴됐던 다른 국가들의 경험은 스크린쿼터 유지의 논리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곧잘 「공정경쟁」을 외치는 쿼터 폐지론자들은 미국영화산업이 전세계 영화수요의 85%, 텔리비전 드라마 수요의 70% 이상 독점하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미국에 의한 문화독점의 피해국들 및 문화다양성 실현을 지지하는 세계인들은 헐리우드에 맞서 자국 문화주권을 수호하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스크린쿼터 폐지의 근거가 되는 한국영화 점유율 40% 달성의 신화 또한 스크린쿼터로 인해 가능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러한 「문화적 예외」 조항은 GATT와 WTO, 그리고 OECD 자유화협약에서도 이미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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