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최동일 부국장겸 정치부장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출정식에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튼튼한 지방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5.16. / 뉴시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출정식에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튼튼한 지방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5.16. / 뉴시스

퇴계 이황선생이 임금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강조한 말이 중국의 고서 주역(周易)에서 인용한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한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의 이 말은 권세가 영원하지 않음을 늘 새겨야 하며 교만과 독단을 경계(警戒)하지 않으면 결국 후회할 일을 맞게된다는 의미를 지녔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주역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용에 비유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용을 '잠룡(潛龍)'이라 하고, 뜻을 세워 하늘 높이 오르는 용을 '비룡(飛龍)'이라 하며,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용을 '항룡(亢龍)'이라고 표현했다.

즉, 항룡유회는 잠룡과 비룡을 거쳐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이르게 된 이후에는 후회와 눈물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 임금들은 스스로를 칭할 때 '덕이 적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과인(寡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임금을 모시고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이말은 더 오를 곳이 없는 항룡(亢龍)의 다른 표현이랄 수 있다. 한 고조를 도와 나라를 세운 책사(策士) 장량은 최고의 개국공신이지만 모든 영예를 포기하고 은둔의 삶을 선택해 천수를 누렸다. 반면 무명용사에서 승전을 거듭해 촉패왕 항우를 물리친 대장군 한신은 개국후 최고의 권력을 눈앞에 두고 한 고조 유방에게 죽임을 당했다.

휘두를수 있는 크기와 만들어진 과정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권력은 이렇듯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하물며 백성들의 선택에 따라 잠시 주어지는 민주사회의 권력은 늘 뜬구름과 같다고 봐야한다. 우여곡절이 많은 선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이번 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31일부터 시작됐다. 예년과 달리 이번 선거의 일정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껴지는 것은 선거가 관심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 미투와 드루킹 등의 요인도 있었지만 결정타는 '대북관계'였다. 남북정상회담과 예정된 북미회담은 선거판마저 현 정부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이처럼 판세가 유리하게 흐르고 최고점에 다다른 지지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르다보니, 벌써부터 일방적인 압승이 점쳐지고 있다. 선거 초반 정국은 물론 충청권 선거판에 직격탄이 된 '미투' 위기를 잘 넘긴 지역의 민주당으로서는 휘파람이 나오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같은 판세로 인해 선거에 임하는 이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고, 바닥에서 전해지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흘려듣는 탈이 생겨났다. 당의 횡포는 당관계자들의 무성의와 무책임이 더해져 적지않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공천과정의 독선과 전횡은 '갑질'이란 비판을 받을 정도라는 게 이를 지켜본 이들의 지적이고보면 민주당은 이미 권력의 향기에 취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동일 부국장겸 정치부장
최동일 부국장겸 정치부장

더구나 지금 민주당의 인기는 좀처럼 다시오기 어려운 정점(頂點)의 수준이랄 수 있어 항룡의 위치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지금 민주당에서 고민하고 따져봐야 할 것은 선거에서 몇 자리를 더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내려갈 길을 살펴 덜 후회하고, 덜 힘드는 하산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당이 세(勢)를 잃자 빌미가 생기면 탈당(脫黨)이 이어진 구 여권의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항룡유회는 옛날에, 멀리, 남들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무엇이 됐든 남들보다 많은 것을, 큰 것을 갖고 있을 때가 이를 새겨봐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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